용재천사의 작은세상

♣ 이탈리아/이탈리아 북부

아드리아해의 여왕, 베네치아

용재천사 - Ailes d'ange 2010. 11. 1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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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ezia

 

- 베네치아 - 

 

 

"아드리아 해의 여왕, 베네치아"

 

 

안녕하세염.....^^

 

오늘은 곤돌라의 낭만이 가득한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가볼께여.....^_^

 

인구 약 40만 명의 베네치아는 영어로는 베니스(Venice)라고 합니닷.....

 

 

 

 

▲ 물의 도시 베네치아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지방에 있는 베네치아는 바다밑 연약한 갯벌에 수백만개의 말뚝을 박아

갯벌에 흩어져 있던 약 120개의 크고 작은 섬들을 400여개 다리로 연결해 만들어진 섬입니다.

 

베네치아는 섬과 섬 사이의 수로가 중요한 교통로 구실을 하며

교통수단으로는 곤돌라라는 작은 배를 이용하는 '물의 도시'이거든여.....

 

오늘날 베네치아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운하예술 건축과 물로 가득찬 골목마다 독특하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넘치는 다른 축제의 섬입니다.

 

 

 

▲ 베네치아 전경

 

아드리아해 바다위에 우뚝 솟아있는 듯한 베네치아는 1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입니다.

 

원래 독립된 도시국가로서 해상무역을 통해 축적한 막대한 부를 자랑하였으며 지중해 전역에

세력을 떨쳤고, 바다를 무대로 호령하던 찬란한 과거를 가지고 있구여, 해상공화국의 영광이

숨쉬고 있지요.....^^

   

 

 

 

▲ 하늘에서 본 베네치아

 

중앙에 베네치아 시가지를 관통하는 S자 모양의 수로(水路)인 카날 그란데(Canal Grande)

운하(運河)가 흐르며 양쪽을 연결하는 3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3개의 다리는 맨위쪽에 스칼치다리, 중간에 리알토다리, 맨아래쪽에 아카데미아다리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리알토다리는 지리적·역사적으로 베네치아의 심장부에 해당합니다.

 

위쪽으로는 무라노 섬이 보이네여.....^^

 

 

 

 

▲ 곤돌라가 정박해 있는 풍경

 

베네치아의 역사를 살펴볼께여.....

서기 4세기 즉 서기 350년경을 전후한 로마제국시대.

유럽 북쪽 추운 땅에 살던 ‘게르만’족들이 떼지어 몰려 내려오기 시작합니닷.

이것을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고 하지요.....

 

게르만족은 야만족이었지만 용감하고 싸움을 잘하는 종족이었죠.....

근∼데 게르만 민족이 대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뭘까여.....ㅡ_ㅡ??

 

몽고지방에서 온 사나운 떠돌이 민족인 ‘훈’족의 침략을 피하기 위한 것인데,

이 훈족은 가는 곳마다 인정사정 없이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는 사나운 족속이었거든요.....ㅡ_ㅡ;;

 

 

 

 

▲ 대운하(카날 그란데) 주변 풍경

 

그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제국은 속으로 썩어 힘이 없는 종이 호랑이였다는.....^^

 

에효.... 무릎팍이 팍팍 쑤시는구낭.....;;

 

툭∼! 치면 픽 쓰러질 정도로 비∼실  비∼실 했거든여.....^^

 

게르만족은 로마제국의 영토를 야금야금 파먹어들기 시작하더니, 450년경에는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본토까지 쳐들어오게 되었고,

 

북이탈리아의 중요 도시인 ‘파도바’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지요.

 

 

 

▲ 대운하(카날 그란데) 주변 풍경

 

'파도바'는 이탈리아의 베네토란 지방에 속해 있었고, 훈족이 쳐들어오자 겁에 질린 베네토 지방

사람들은 육지를 벗어나 가까운 '라구넨' 섬으로 피난을 갔는데, 이 때부터 이 섬을 '베네치아'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즉 베네토 사람들이 피난가서 살았다는 이유로 베네치아란 이름이 붙었지요.

 

 

 

▲ 대운하(카날 그란데) 주변 풍경

 

그런데 베네토 사람들이 베네치아로 피난와서 살다 보니까,

1. 기후가 좋아 일년 내내 밝은 햇빛을 쬐며 살 수 있고,

2. 바다에서는 물고기가 많이 잡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구여

3. 육지와 떨어진 섬이기 때문에 적군이 함부로 쳐들어오지도 못하고, 막아내기도 쉬웠지요.....

 

이런 이유로 육지로 돌아가지 않고 걍∼주저앉아 독립된 나라를 만들고 문화의 꽃 피운 것이

바로 오늘날 베네치아의 시작입니닷.

 

 

 

수세기를 걸친 끝에 완성된 인공의 섬 베네치아.

지금의 베네치아 모습은 이미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이죠.

 

바닷물이 흘러가는 큰 물길인 대운하(카날 그란데)를 중심으로 여러 섬들이 연결되면서

섬과 섬 사이에는 물길이 작은 운하 리오가 만들어졌구여,

 

리오는 바닷물의 흐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베네치아 주변의 바다물이 고여서 썩는 것을

방지합니다

 

 

 

 

▲ 산타루치아 기차역

 

베네치아는 1171년 산 마르코, 산타 크로체, 산 폴로, 카스텔로, 산나레죠, 도르소두로 등

6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졌는데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다.

 

그 중 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산나레죠(Cennaregio) 구역에 있는 산타루치아

역입니다.

 

원래 베네치아로 가는 유일한 길은 바다길 뿐이었는데, 19세기 중반에 내륙과 연결되는

다리가 완성되고 철도가 놓여졌어요.

 

이제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이 곳 산타루치아역에서 베네치아 여행을 시작합니다.

   

 

 

 

산타루치나역을 빠져나오면 물로 가득찬 도시의 풍경과 만나게 됩니다.

택시와 버스가 손님을 기다리는 여느 역과는 달리 이곳은 지나다니는 배들과 그 배에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분주하지요.....

 

16세기의 도시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베네치아에서는 배를 타는 것 말고는 걷는

것만이 유일한 여행방법입니다.

 

익숙하지 않더라도 베네치아에 도착하면 배를 타야하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갑자기 탄 배가 주는 울렁거림도 잠시, 여행객들은 베네치아 대운하 경치에 눈을

빼앗기게 됩니다.

 

  

 

 

▲ 수상버스 바포레토와 수상택시

 

베네치아의 수상교통수단은 버스와 같이 여러명이 타는 대중교통 수상버스 바포레토,

택시같은 역할을 하는 수상택시, 대운하의 양쪽을 왕복하는 보트인 트라게토(Traghetto),

그리고 관광용 곤돌라가 있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은 바포레토라 불리는 수상버스입니다.

바포레토는 원래 증기선 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곳에서는 버스와 동의어가

됐지요.

베네치아의 대운하(카날 그란데)를 관통하는 1번 바포레토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꼭 한번 타보는 노선이구여,

베네치아 주변의 다른 섬으로 이동할 때도 이 바포레토는 필수입니다.

 

 

 

 

▲ 곤돌라 - Gondola

 

뭐니뭐니 해도 베네치아운하의 명물은 곤돌라.

이탈리아어로 흔들리다는 뜻을 가진 곤돌라는 검정 턱시도를 빼입은 늘씬한 신사의 이미지가

떠올려집니다.

 

한쪽에서만 노를 젓기 때문에 약간 기울어져 있는 곤돌라는 원래는 귀족들만 타고 다니던

일종의 고급 승용차였어요.

 

 

 

▲ 곤돌라 - Gondola

 

한 때는 1만척이 넘던 곤돌라는 지금은 100척만 남아 있다고 해여.....

 

이 곤돌라를 모는 곤돌리에는 엄격한 자격심사를 통과한 전문가들입니다.

 

자격심사는 곤돌라를 모는 기술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와 베네치아의 역사 문화에 대한

지식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곤돌리에(곤돌라 사공)는 베네치아 문화의 전도사이기도 하지요.....

 

 

 

▲ 직사각형 모양의 산 마르코 광장(San Marco Piazza)

 

본격적인 베네치아의 여행은 산 마르코 광장이 그 출발점입니다.

 

3면이 고딕양식의 고풍스런 산 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에서 가장 큰 광장이지요.

 

수세기 동안 베네치아의 사회·정치 중심지였던 산 마르코 광장은 수많은 비둘기떼와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다.

 

광장 동쪽으로 산마르코 대성당과 높이 99m의 캄파닐리 종루가 서 있고, 그 옆에 두칼레

궁전이 있으며, 나머지 3면에는 아치가 이어진 회랑이 줄지어 서 있다.

 

뒤쪽 멀리 보이는 둥근 돔모양의 건물은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입니다.

 

 

 

 

 

▲ 산 마르코 광장

 

여행자가 많이 모이는 산 마르코 광장은 많은 사람들과 여러 가지 카페, 상점, 비둘기떼로

늘 분주합니다.

 

산 마르코 광장의 이름은 이곳에 자리잡은 산 마르코 대성당에서 유래합니다.

 

베네치아를 굴복시켰던 나폴레옹은 이 광장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했다고 해여.....

 

 

 

 

▲ 카페 플로리안 (Cafe Florian)

 

산 마르코 광장의 카페들은 그 역사가 깊기로 유명합니다.

 

1720년 개업한 카페 플로리안은 300년의 역사를 가진 가장 오래된 카페로서 여름이 되면

클래식음악 연주를 들으면서 음료를 즐길 수 있어요.

 

또한 베네치아에서 커피를 제일 먼저 팔기 시작한 곳으로서 핫쵸코가 유명해여.

 

 

 

▲ 카페 콰드리 (Caffe Quadri)

 

카페 플로리안의 맞은 편 주랑에 있는 카페 콰드리는 1762년경에 문을 열었다고 해여.....

여름에는 광장쪽에 재즈 생음악을 연주하는데 2층에 올라가면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 있다.

 

 

 

 

 

▲ 산 마르코 대성당 (Basilica di San Marco)

 

서기 832년 완공된 산 마르코 대성당은 베네치아의 수호신 성 마르코 유해가 모셔져 있다.

 

수호신을 모시고 있는 공간인 만큼 산마르코 성당은 그 어느 곳보다 화려하게 장식해 여행자

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황금으로 장식된 내부는 매우 화려하고 99m의 종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산 마르코 광장과

베네치아의 풍경이 여유롭다.

 

 

 

▲ 바쏘성당 (화면캡처)

 

산 마르코 대성당에서 왼쪽으로 가면 오래된 작은 성당건물이 나옵니다.

1076년에 완공된 산 바쏘 성당입니다.

 

근∼데 이런 작고 오래된 성당을 왜 찾았을까여-_-?

 

이곳에는 베네치아가 낳은 위대한 음악가 안토니오 비발디의 숨결이 남아있기 때문이죠.

 

베네치아 궁정 바이올니스트의 아들로 태어난 비발디는 가톨릭 성당의 신부였고,

이곳 산 바쏘 성당에서 제자들에게 음악을 가르쳤습니다.

 

근데 비발디는 일년만에 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고 음악의 길을 걷게 됩니다.

 

 

 

 

▲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하는 모습 (화면캡처)

 

비발디는 바이올니스트로서 고아원의 음악교사로서 38편의 오페라와 400개가 넘는 협주곡을

남겼구여,

우리에게 익숙한 비발디의 사계는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풍경이 낳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산 바쏘 성당은 오늘날 성당으로서의 기능은 하지 않고 있으나,

비발디의 작품을 일년 내내 연주하는 작은 공연장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매일하는 것은 아니고

일주일에 3, 4일 정도한다고 해여.....

 

 

 

 

▲ 두칼레 궁전 - Palazzo Ducale

 

산 마르코 광장 동편에는 베네치아의 권력과 영광의 상징인 두칼레 궁전이 있습니다.

 

도제(총독)라고 불리는 베네치아의 최고 통치자는 이곳 거인의 계단에서 취임식을 거행했다고 해여.

 

 

 

 

▲ 바다쪽에서 바라 본 두칼레 궁전

 

 

 

▲ 거인의 계단

 

여행객들은 거인의 계단을 통해 들어가면 사자의 입, 대회의실, 감옥 등을 둘러보게 됩니다.

 

 

 

 

▲ 두칼레 궁전 내부 모습

 

두칼레 궁전은 내부가 대단히 화려하고, 베네치아를 다스리던 공간은 2층에서부터 시작됩니다.

 

 

 

 

▲ 사자의 입

 

2층에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사자의 입'은 신분을 감추고 비밀을 고발할 때 사용되던

일종의 투고함입니다.

 

3층에는 고문실이 있는데 일반 관광객에게는 개방을 하지 않습니다.

 

글구 유죄가 확정된 자는 두칼레 궁전 옆에 있는 피리지오니 누오베 감옥으로 보내졌는데,

궁전과 감옥을 연결하는 다리를 ‘탄식의 다리’라고 해여.

 

 

 

 

▲ 탄식의 다리 (Ponte dei Sospiri)

 

베네치아의 400여개에 달하는 다리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총독부가 있던 두칼레 궁전과

피리지오니 누오베 감옥을 연결하는 탄식의 다리입니다.

 

'10인의 평의회'에서 형을 받은 죄인은 누구나 이 다리를 지나 감옥으로 연행되었는데,

두칼레 궁전에서 재판을 받고 나오던 죄수들이 이 다리를 건너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다는

의미에서 이 다리의 좁은 창문을 통해 밖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고하여 '탄식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바람둥이였던 카사노바가 투옥되었다가 복역 15개월만에 탈옥을 하여 더 유명해진 곳이기도

해여.

근데 카사노바는 탈옥에 성공하여 파리로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해여.....

 

“나는 여성을 사랑했다.   그러나 내가 진정 사랑한 것은 자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