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밤 - 노천명 겨울 밤 겨울 날씨란 눈이 좀 내려야 포근한 맛도 있을 법 한데, 이렇게 강추위를 당하고 보면 미상불 견디어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방장을 쳤는데도 워낙 외풍이 세다보니, 방안에 앉아서도 이마가 곧 시려온다. 하긴, 예전의 추위에 비긴다면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한밤중에 어디서 "쨍..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1 2013.09.04
설야산책 (雪夜散策) 설야산책 (雪夜散策) 저녁을 먹고 나니 퍼뜩 퍼뜩 눈발이 날린다. 나는 갑자기 나가고 싶은 유혹에 끌린다. 목도리를 머리까지 푹 눌러 쓰고 기어이 나서고야 만다. 나는 이 밤에 뉘 집을 찾고 싶지는 않다. 어느 친구를 만나고 싶지도 않다. 그저 눈을 맞으며 한없이 걷는 것이 오직 내게 ..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3 2013.08.09
우송 (雨頌) - 김진섭 우송(雨頌) 이제로부터서는 차차로 겨울에는 보기 드물던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다. 꽃을 재촉하는 봄비로부터 우울한 가을비에 이르기까지 혹은 비비하게, 혹은 방타하게, 혹은 포르티시모로, 혹은 피아니시모로, 불의에 내리는 비가 극도로 절약된 자연 속에 사는 도회인의 가슴에까지..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4 2012.11.15
매화찬 매화찬 나는 매화를 볼 때마다 항상 말할 수 없이 놀라운 감정에 붙들리고야 마는 것을 어찌할 수 없으니, 왜냐 하면, 첫째로 그것은 추위를 타지 않고 구태여 한풍을 택해서 피기 때문이요, 둘째로 그것은 그럼으로써 초지상적인, 비현세적인 인상을 내 마음속에 던져 주기 때문이다. 가..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2 2012.11.15
섬진강 참게 섬진강 참게 늦가을 섬진강에선 연어와 참게가 만난다. 연어는 북태평양에서 돌아와 강을 거슬러 오르고, 참게는 계곡에서 기어 나와 바다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서로 방향은 다르지만 이동하는 목적은 똑같다. 알을 낳기 위해서이다. 산란 후 자기가 태어났던 하천으로 돌아오는 연..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3 2012.07.08
산이여 나무여 - 박완서 산이여 나무여 며칠 전 후배 문인들과 일박이일로 남도 여행을 다녀왔다. 섬진강 유역은 내 마음이 가장 이끌리는 데고, 갔다 오면 더한 그리움으로 남는 고장이다. 섬진강 굽이마다 지리산 골짜기마다 펼쳐 보이는 절경도 절경이려니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지 않은 곳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3 2011.04.07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 박완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신나는 일 좀 있었으면 가끔 별난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고 싶은 충동 같은 것 말이다. 마음 속 깊숙이 잠재한 환호에의 갈망 같은 게 이런 충동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샌 좀처럼 이런 갈망을 풀 기회가 없다. 환호가 ..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1 2011.04.07
질화로 - 양주동 질화로 촌가의 질화로는 가정의 한 필수품, 한 장식품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 그들의 사랑의 용로이었다. 되는대로 만들어진, 흙으로 구운 질화로는, 그 생김생김부터가 그들처럼 단순하고 순박하건마는, 지그시 누르는 넓적한 불돌 아래, 사뭇 온종일 혹은 밤새도록 저 혼자 불을 지니고 보호하는..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4.07
초가지붕의 서정 - 이유식 초가지붕의 서정 망중한으로 옛 사진첩을 꺼내본다. 빛바랜 사진 한 장. 내 유소년 시절의 고향마을 정경이 필름처럼 떠오른다. 살며시 눈을 감아 본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옛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초가지붕들이 추억처럼 멀리 보인다. 어미소가 하품을 하는 듯 "엄매"하고 우는 게으른 울음소..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4.06
자운영이 만발할 때 - 이은재 자운영이 만발할 때 내 유년의 봄은 냇가에 뿌리를 내린 버들강아지가 솜털을 털어 내며 시작되었다. 설한풍(雪寒風)에도 어김없이 꽃을 피워내는 매화향기가 뒷동산에서 봄의 전령을 알리면 산기슭에 움츠려 있던 산수유가 파문을 지으며 꽃망울을 터트렸다. 살얼음 갈라지는 소리에 동면하던 개구..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4.06
감주와 설탕물 - 강돈묵 감주와 설탕물 어려서 나는 단 것은 오직 감주뿐인 줄 알았다. 그것도 강바닥이 얼어터지는 겨울밤에 마시는 감주의 맛이란 그 무엇에 비할 수가 없었다. 밤이 깊어지면 어머니는 감주를 뜨러 나가신다. 방문을 열고나서면 칠흑의 마당 저편으로 어둠이 도망쳤다. 등을 든 어머니 뒤엔 으레 내가 양푼을 들고 따랐다. 김치 광에 들어서며 어머니는 등을 내게 넘겨주시고, 내 손의 양푼을 가져 가셨다. 감주가 가득한 양푼을 들고, 칼바람에 쫓겨 방으로 다시 들어올 때는 기분이 좋았다. 양푼에 담긴 감주에 형제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희끄무레한 색깔을 띠고 있는 감주, 어쩜 저 색깔이 단맛을 내는 것이려니 했다. 좀 나이가 들어 배앓이하면서 아버지에게서 얻어먹은 설탕물은 전혀 색깔이 없었다. 장이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 ..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1 2011.04.06
달맞이꽃 - 곽홍렬 달맞이꽃 중학에 들어가고부터 하교 시간이 늦어지는 날이 잦았다. 지금 아이들처럼 방과 후에 이 학원, 저 교습소 옮겨 다니느라고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영어암송대회다 웅변대회다 백일장이다 해서 걸핏하면 대표로 뽑혀 연습을 하다 보니 야심토록 학교에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리잠직하고 재..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2 2011.04.06
오랑캐꽃 - 이원수 오랑캐꽃 옷 벗은 나뭇가지에는 아직 잎이 피지 않았는데, 길가 마른 잔디 속에 꽃이 피었다. 그건 화려한 꽃도 아니요, 지극히 작고 빈약한 꽃이다. 무르녹는 듯한 봄날에 어우러져 피는 벚꽃이나 복숭아꽃도 아니요, 더구나 의젓한 자태를 자랑할 수 있는 모란이나 작약같이 남의 눈을 끌 수 있는 것..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4 2011.04.05
알밤 빠지는 소리 - 목성균 알밤 빠지는 소리 우리 집 뒤꼍에 추석 무렵 아람이 버는 올밤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알밤 빠지는 소리는 작다. 마음이 조용히 머물러 있어야 들린다. 그래서 마음이 분방한 철없는 시절에는 못 듣는다. 할머니 말마따나 철이 나야 들린다. 어느 가을날 마루에 걸터앉아서 파랗게 깊어진 하늘을 발견..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4 2011.04.05
어머니의 김치 맛 - 정목일 어머니의 김치 맛 식탁 앞에 앉으면 무엇인가 텅 빈 것 같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음을 느낀다. 아내가 만든 김치며 된장국 등에선 어머니의 음식 맛을 느낄 수 없다. 어머니가 담근 김치 하나만으로도 입맛이 당겨 단번에 밥그릇을 비워 내던 모습을 떠올린다. 멸치 젓갈을 넣은 김장김치, 손으로 양념..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4 2011.04.04
산마을에 오는 비 - 윤모촌 산마을에 오는 비 길을 가다 비를 만나게 되면 나무나 추녀 밑으로 들어가 긋게 되는데, 아무래도 젖게 마련이다. 어쩌다 동성(同性)인 남자 우산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도 용기가 안 나고, 여자 우산 속으로는 더더구나 들어설 수가 없다. 이쪽에서 우산을 받고 갈 때도 그러해서, 여성을 불러들이자니 ..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3 2011.04.04
노을이 아름다운 까닭 - 박완서 노을이 아름다운 까닭 가을이 산을 내려오고 있다. 대청봉이나 내장산처럼 자지러지는 단풍이 아니지만 산정에만 드문드문 보이던 황갈색이 어느 틈에 중턱까지 퍼졌다. 봄은 기를 쓰고 올라가더니 가을은 이렇게 신속하게 내려오고 있다. 왜 그렇게 빨리 내려오는지 내리막길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1 2011.04.04
하나의 풍경 - 박연구 하나의 풍경 찌는 듯이 더운 날씨에 아이 할아버지는 웬 절구통을 사 오셨다. 메주콩도 찧어야 할 것이고 언제부터 벼르던 차에 좋은 돌절구통을 만났기에 들여온 거라 말씀하시기에 자세히 보니까 가짜 돌절구였다. 이 무거운 걸 버스 종점에서부터 메고 왔다는 인부에게 절구통값 오천오백 원을 얼..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4.04
냉면기 - 차주환 냉면기 날이 더워지는 데 따라 냉면의 풍미도 한층 더해간다. 학인(學人)이 식도락(食道樂)을 논하는 것은 약간 체통에 어울리지 않는 것같이 보이겠으나 또 먹지 못하면 연구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것을 그리 타박할 것도 못 된다. 그것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어쩌다 외식을 ..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1 2011.04.03
5월의 산골짜기 - 김유정 5월의 산골짜기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20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삑 둘러섰고 그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속에 묻힌 모양이 마치 움푹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4 2011.04.03
청추 수제 - 이희승 청추 수제 (淸秋數題) 벌레 낮에는 아직도 90 몇 도의 더위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의 숨을 턱턱 막는다. 그런데, 어느 틈엔지 제일선에 나선 가을의 전령사가 전등 빛을 따라와서, 그 서늘한 목소리로 노염에 지친 심신을 식혀주고 있다. 그들은 여치요, 베짱이요, 그리고 귀뚜라미들이다. 물론, 이 전..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4.03
청춘 예찬 - 민태원 청춘 예찬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과 같이 힘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4.03
도마 소리 - 김소운 도마 소리 진해군항―인구 밀도로는 부산의 십분의 일이 못될―은 물이 흔하고 모기 많기로 유명한 벚꽃 명승지, 이 진해에서 나는 어려서 몇 해를 자랐다. 여기서 처음 소학교를 다니고, 여기서 첫사랑을 알고―. 내 알뜰이는 골무를 깁고 냉이를 캐는 시골 처녀였다. 집안끼리 공인한 사랑이건마는 ..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2 2011.04.03
내 마음의 톱밥난로 - 이정하 내 마음의 톱밥난로 춥다. 옷을 두껍게 입었는데도 춥다면 그것은 마음이 추운 탓이다. 아무리 내의를 입어 본들 사랑의 내의를 갖춰 입지 않았다면 우리는 추울 수밖에 없다. 겨울이 닥치면 사람들은 저마다 부산하다. 하지만 난로를 몇 개 더 들여놓는다고 해서 추위가 가실 것인가. 난방시설이 아무..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1 2011.03.30
들꽃을 옮겨 심다 - 법정 들꽃을 옮겨 심다 오늘 아침 뒤꼍에서 개망초를 꺾어다가 오지 항아리에 꽂았더니 볼만하다. 아니, 볼만하다가 아니라 볼수록 아주 곱다. 개망초는 산자락이나 밭두둑 어디서나 마주치는 흔한 꽃이다. 너무 흔하기 때문에 꽃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스치고 지나면서 눈여겨보지 못했는데 가까이..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2 201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