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송 (雨頌) - 김진섭 우송(雨頌) 이제로부터서는 차차로 겨울에는 보기 드물던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다. 꽃을 재촉하는 봄비로부터 우울한 가을비에 이르기까지 혹은 비비하게, 혹은 방타하게, 혹은 포르티시모로, 혹은 피아니시모로, 불의에 내리는 비가 극도로 절약된 자연 속에 사는 도회인의 가슴에까지..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4 2012.11.15
오랑캐꽃 - 이원수 오랑캐꽃 옷 벗은 나뭇가지에는 아직 잎이 피지 않았는데, 길가 마른 잔디 속에 꽃이 피었다. 그건 화려한 꽃도 아니요, 지극히 작고 빈약한 꽃이다. 무르녹는 듯한 봄날에 어우러져 피는 벚꽃이나 복숭아꽃도 아니요, 더구나 의젓한 자태를 자랑할 수 있는 모란이나 작약같이 남의 눈을 끌 수 있는 것..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4 2011.04.05
알밤 빠지는 소리 - 목성균 알밤 빠지는 소리 우리 집 뒤꼍에 추석 무렵 아람이 버는 올밤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알밤 빠지는 소리는 작다. 마음이 조용히 머물러 있어야 들린다. 그래서 마음이 분방한 철없는 시절에는 못 듣는다. 할머니 말마따나 철이 나야 들린다. 어느 가을날 마루에 걸터앉아서 파랗게 깊어진 하늘을 발견..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4 2011.04.05
어머니의 김치 맛 - 정목일 어머니의 김치 맛 식탁 앞에 앉으면 무엇인가 텅 빈 것 같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음을 느낀다. 아내가 만든 김치며 된장국 등에선 어머니의 음식 맛을 느낄 수 없다. 어머니가 담근 김치 하나만으로도 입맛이 당겨 단번에 밥그릇을 비워 내던 모습을 떠올린다. 멸치 젓갈을 넣은 김장김치, 손으로 양념..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4 2011.04.04
5월의 산골짜기 - 김유정 5월의 산골짜기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20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삑 둘러섰고 그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속에 묻힌 모양이 마치 움푹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4 2011.04.03
어떤 주례사 - 법정 어떤 주례사 며칠 전 한 친지가 느닷없이 자기 아들 결혼식에 나더러 주례를 서달라고 했다. 유감스럽지만 내게는‘주례 면허증’이 없어 해줄 수 없다고 사양했다. 나는 내 생애에서 단 한 번 처음이면서 마지막인 주례를 3년 전 6월 어느 날 한 적이 있다. 그날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나는 오늘 일찍..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4 2011.03.28
열무가 있는 여름 - 배혜숙 열무가 있는 여름 햇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날씨는 싱싱하다 못해 퍼덕퍼덕 살아있다. 그래서 여름은 밝다. 오만한 하늘이 세상을 굽어보는 날, 열무김치를 담는다. 냉장고 속, 여러 개의 김치통에서 제각기 다른 맛의 열무김치가 익어가고 있는데 시장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무청이 생생한 열..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4 2011.03.28
인 연 인 연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었다. 힘드는 출강을 한 학기 하게 된 것은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십 년 전, ..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4 2011.03.27
얼굴 - 안병욱 얼 굴 사람은 저마다 정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다. 착하고 품위 있는 얼굴의 소유자도 있고, 흉하고 험상궂은 얼굴을 가진 이도 있다. 우리는 자기의 얼굴을 선택하는 자유는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부모님한테서 선물로 받은 얼굴이다. 재주나 체질과 마찬가지로 운명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누구나..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4 2011.03.27
올해도 봉숭아꽃은 피었습니다 올해도 봉숭아꽃은 피었습니다 우리 집 장독대 밑에는 올해도 봉숭아 꽃이 만발했다. 누가 일부러 씨를 뿌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땅을 누가 눈 여겨 잘 보호해 준 것도 아닌데, 봄만 되면 작년 그 자리에 어김없이 붕숭아 새싹은 돋아난다. 그러면 사람들은 생각난 듯 "그래, 작년 여기에서 봉숭..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4 2011.03.27
아름다운 봄날 - 도종환 아름다운 봄날 봄 산을 넘다 ‘아!’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옵니다. 연두색 물감에다 흰색을 조금 섞어 붓끝으로 톡톡톡 찍어 놓은 것 같은 나무들. 그건 신갈나무 갈참나무 같은 참나무류의 새로 돋는 잎들일 겁니다. 바로 아래에 짙은 녹색의 소나무 잎들이 뒤를 받쳐주고 있어 더욱 싱싱하게 연록색..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4 2011.03.27
여름밤 - 노천명 여름밤 앞벌 논가에서 개구리들이 소낙비 소리처럼 울어대고 삼밭에서 오이냄새 가 풍겨오는 저녁 마당 한 귀퉁이에 범삼넝쿨, 엉겅퀴, 다북쑥, 이런 것들이 생짜로 들어가 한데 섞여 타는 냄새란 제법 독기가 있는 것이다. 또한 거기 다만 모깃불로만 쓰이는 이외의 값진 여름밤의 운치를 지니고 있..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4 2010.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