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힘 - 강경화 詩 - 살아있는 힘 - 우리들이 살아 있는 것은 저 마을 저녁 불빛이 아직 따뜻한 굴뚝 연기 사이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살아 있는 것은 아직은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살아 있는 것은 갈 데 없는 고라니 토끼 고양이들이 우리 집 뒤뜰에 내놓은 궂은 저녁..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4.06.13
사슴 - 노천명 詩 - 사 슴 -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 노천명 詩 - (시집, 珊瑚林, 19..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3.09.14
산 너머 남촌에는 - 김동환 詩 -산 너머 남촌에는-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너..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3.09.01
살아있는 날은 - 이해인 詩 -살아있는 날은- 마른 향내 나는 갈색 연필을 깍아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몇 번이고 지우며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깍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살아있는 연필 어둠..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3.08.19
성호 부근(星湖附近) - 김광균 詩, -성호 부근(星湖附近)- 1 양철로 만든 달이 하나 수면 위에 떨어지고, 부서지는 얼음 소리가 날카로운 호적(胡笛)같이 옷소매에 스며든다. 해 맑은 밤 바람이 이마에 내리는 여울가 모래밭에 홀로 거닐면 노을에 빛나는 은모래같이 호수는 한 포기 화려한 꽃밭이 되고, 여윈 추억의 가지가..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3.08.10
승 무(僧舞) - 승 무(僧舞) -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 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3.02.12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詩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數千數萬)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0.08.14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詩 - 성북동 비둘기 -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바퀴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0.08.14
세월이 가면 - 박인환 詩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0.06.09
새벽 편지 - 곽재구 詩 -새벽 편지- 새벽에 일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은 잠들고 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박이는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 아름다움은 새벽의 창을 열고 우리..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0.06.01
새벽 창가에서 - 이해인 詩 -새벽 창가에서- 하늘 그 푸른 둘레에 조용히 집을 짓고 살자 했지 귤빛 새벽이 어둠을 헹구고 눈을 뜨는 연못가 순결은 빛이라 이르시던 당신의 목소리 바람 속에 찬데 나의 그림자만 데리고 저만치 손 흔들며 앞서 가는 세월 나의 창문엔 때로 어둠이 내렸는데 화려한 꽃밭에는 비도 내..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0.05.04
사평역에서 - 곽재구 詩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0.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