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화로 - 양주동 질화로 촌가의 질화로는 가정의 한 필수품, 한 장식품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 그들의 사랑의 용로이었다. 되는대로 만들어진, 흙으로 구운 질화로는, 그 생김생김부터가 그들처럼 단순하고 순박하건마는, 지그시 누르는 넓적한 불돌 아래, 사뭇 온종일 혹은 밤새도록 저 혼자 불을 지니고 보호하는..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4.07
초가지붕의 서정 - 이유식 초가지붕의 서정 망중한으로 옛 사진첩을 꺼내본다. 빛바랜 사진 한 장. 내 유소년 시절의 고향마을 정경이 필름처럼 떠오른다. 살며시 눈을 감아 본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옛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초가지붕들이 추억처럼 멀리 보인다. 어미소가 하품을 하는 듯 "엄매"하고 우는 게으른 울음소..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4.06
자운영이 만발할 때 - 이은재 자운영이 만발할 때 내 유년의 봄은 냇가에 뿌리를 내린 버들강아지가 솜털을 털어 내며 시작되었다. 설한풍(雪寒風)에도 어김없이 꽃을 피워내는 매화향기가 뒷동산에서 봄의 전령을 알리면 산기슭에 움츠려 있던 산수유가 파문을 지으며 꽃망울을 터트렸다. 살얼음 갈라지는 소리에 동면하던 개구..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4.06
하나의 풍경 - 박연구 하나의 풍경 찌는 듯이 더운 날씨에 아이 할아버지는 웬 절구통을 사 오셨다. 메주콩도 찧어야 할 것이고 언제부터 벼르던 차에 좋은 돌절구통을 만났기에 들여온 거라 말씀하시기에 자세히 보니까 가짜 돌절구였다. 이 무거운 걸 버스 종점에서부터 메고 왔다는 인부에게 절구통값 오천오백 원을 얼..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4.04
청추 수제 - 이희승 청추 수제 (淸秋數題) 벌레 낮에는 아직도 90 몇 도의 더위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의 숨을 턱턱 막는다. 그런데, 어느 틈엔지 제일선에 나선 가을의 전령사가 전등 빛을 따라와서, 그 서늘한 목소리로 노염에 지친 심신을 식혀주고 있다. 그들은 여치요, 베짱이요, 그리고 귀뚜라미들이다. 물론, 이 전..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4.03
청춘 예찬 - 민태원 청춘 예찬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과 같이 힘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4.03
폭포와 분수 - 이어령 폭포와 분수 동양인은 폭포를 사랑한다. 비류 직하 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란 상투어가 있듯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그 물 줄기를 사랑한다. 으레 폭포수 밑 깊은 못 속에는 용이 살며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한다. 폭포수에는 동양인의 마음 속에 흐르는 원시적인 환각의 무지개가 서려 있다. ..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3.30
잡초와 힘겨루기 - 최복희 잡초와 힘겨루기 일반적으로 잡초는 불필요한 존재로 여긴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봄부터 뜰에 돋아나는 잡초를 모두 뽑아버리게 되는데, 고통의 겨울을 인내하고 땅을 헤집고 올라온 여린 풀포기를 보고 있노라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거르는 때도 있다. 장마가 시작되면 풀들은 제 세상을 만난 ..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3.29
처마 밑에서 - 황영자 처마 밑에서 버스에서 내려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는데 갑자기 한두 방을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드디어 비를 뿌리기 시작한 것이다. 금세 빗줄기는 굵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좁은 골목길을 뛰어가면서 어디 비 피할 곳이 없는지 두리번거렸다. 그때 마침 한 허름한 ..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3.29
초승달이 질 때 초승달이 질 때 소쩍새가 피를 쏟듯 구슬프게만 울던 늦은 봄 초저녁으로 기억된다. 산과 산이 서로 으스스하게 허리를 부비고 그들끼리 긴 가랭이를 꼬고 누운 두메인지라 해만 지면 금시 어두워졌고 솔바람이 몰고 오는 연한 한기로 미닫이를 닫아야 했다. 40리 밖 읍내에 가셨다가 돌아오시지 않은 ..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3.27
호미 예찬 - 박완서 호미 예찬 내가 마당에서 흙 주무르기를 좋아한다는 걸 아는 친지들은 외국 나갔다 올 때 원예용 도구들을 선물로 곧잘 사오곤 한다. 모종삽, 톱, 전지가위, 갈퀴 등은 다 요긴한 물건들이지만 너무 앙증맞고 예쁘게 포장된 게 어딘지 장난감 같아 선뜻 흙을 묻히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전지가위 외에..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3.27
행복(幸福)의 메타포 행복(幸福)의 메타포 [1] 앉은뱅이꽃의 노래 괴테의 시(詩) 가운데 「않은뱅이꽃의 노래」라는 시가 있다. 어느 날, 들에 핀 한 떨기의 조그만 앉은뱅이꽃이 양의 젖을 짜는 순진 무구한 시골 처녀의 발에 짓밟혀서 시들어 버리고 만다. 그러나 앉은뱅이꽃은 조금도 그것을 서러워하지 않..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1.03.27
향토유정기 - 노천명 향토유정기(鄕土有情記 ) 밤 기차가 가는 소리는 흔히 기인 여행과 고향을 생각나게 해준다. 고향이 그리울 때면 정거장 대합실에 가서 자기 고향 이름을 외치는 스피커의 소리를 듣고 온다는 다꾸보꾸(琢木: 일본의 유명한 시인)도 나 만큼이나 고향을 못 잊어 했던가 보다. 아버지가 손수 심으신 아.. ▶ 수필(隨筆) 모음/수필 모음 5 2010.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