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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영이 만발할 때 - 이은재

용재천사 - Ailes d'ange 2011. 4. 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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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영이 만발할 때



  내 유년의 봄은 냇가에 뿌리를 내린 버들강아지가 솜털을 털어 내며 시작되었다. 설한풍(雪寒風)에도 어김없이 꽃을 피워내는 매화향기가 뒷동산에서 봄의 전령을 알리면 산기슭에 움츠려 있던 산수유가 파문을 지으며 꽃망울을 터트렸다. 살얼음 갈라지는 소리에 동면하던 개구리 귀를 세우고 앞산에 수줍게 핀 진달래꽃 붉어지면 나는 자운영 나물을 캐러 들녘으로 달려가곤 했다.

 

  자운영 나물을 좋아하셨던 할머니 때문에 나물을 캐러 가면 자운영에 욕심이 가곤 했다. 그러나 자운영은 쑥이나 냉이처럼 언덕에 저절로 돋아나는 봄나물이 아니었다. 누군가 씨앗을 뿌려 가꾸는 주인 있는 식물이었다. 더러는 언덕에 씨앗이 떨어져 주인 없는 자운영도 있었지만 수량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운영 밭에 살짝 들어가 자운영을 한 소쿠리 캐서 도망치곤 했다. 혹시 누가 보았을까 두려운 진땀이 가슴으로 흘러도 맛있게 드실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냥 흐뭇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가끔 이웃 동네로 자운영 서리를 하러 갔다. 저녁 무렵 물을 길러 우물가로 모여든 아낙네들은 그믐밤에 자운영 서리를 하자며 은밀한 눈빛을 보냈다. 엄마를 대신해 물을 길러 왔다가 그 모의를 엿들을 때면 나는 신바람이 났다. 엄마는 나의 동행을 달가워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엄마 몰래 살금살금 따라가곤 했다.

 

  자운영을 서리하러 가는 날은 유난히 어둠이 깊었다. 나는 주인에게 들키는 것보다 깊은 어둠이 더 무서웠다. 주인에겐 들키지 않았지만 별들에겐 무수히 들켰던 밤, 별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촌부들의 비행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으면서도 주인에게 소리치지 않았다. 정강이까지 자란 자운영을 낫으로 벨 때마다 놀란 개구리들은 풀 섶으로 도망치느라 야단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봄밤의 풍광에 매료되어 설레었다. 정적에 뒤덮인 들녘은 반딧불이의 비행으로 형광 숲이 되었고, 논두렁에서 그리움을 토하는 풀벌레들의 세레나데 소리에 마음이 젖어들곤 했다.

 

  한 자루씩 담은 자운영 자루를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마음은 뿌듯하면서도 가슴은 쿵쿵 뛰었다. 동네 어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졸였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조금 전 전운이 감돌던 비무장 지대 같던 자운영 밭에 꼬리를 단 유성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유랑 별이 되어 자운영 밭을 헤매는 꿈을 밤새 꾸곤 했다.

 

  인기척조차 살라버린 그믐밤/ 자루 하나씩 숨기고/ 도둑고양이 담을 넘듯/ 밭이랑을 걸었지//

고요한 풀섶/ 반딧불이 섬광에/ 놀란 개구리/ 푸드득 달아나는 소리에/ 내가 더 화들짝 놀랐던가//

 보릿고개 남루한/ 빈 밥상에/ 혼자 있음을/ 몹시 미안해 하던//

봄날이면/ 서럽도록 그리운 맛 같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봄날의 하루해는 유난히 길었을 것이다. 삽살개 혼자서 빈집을 지키고 있던 유년의 봄날에 학교에서 돌아와 허기를 채우려고 여기저기 뒤지다 보면 아랫목 담요 속에 고구마 몇 알이 조심스럽게 앉아 있었다. 온기가 남아 있는 고구마는 엄마의 체온 같아서 일터에 나가신 엄마의 부재로 쓸쓸한 나를 위무해 주었다. 겨우내 지겹도록 먹었던 고구마를 군말 없이 삼킨다.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던 그 시절에 간식으로 고구마라도 먹을 수 있었던 부유가 어딘가. 어떤 날은 실컷 생고구마를 베어먹고 무심코 마주친 거울 속에서 입가에 고구마 전분이 하얗게 묻은 낯선 나를 발견하곤 했다. 숲에서 땔감을 구해야 했던 유년 시절, 숲에 가보면 낙엽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빈농의 허청에 쌓이고 황토 흙만 푸시시 얼어 있었다. 그런 시절에 자운영 서리는 어쩌면 가난을 이겨내기 위한 민초들의 전투였었는지도 모른다.

 

  자운영 꽃이 만발할 때면 자운영을 서리하며 설레던 봄밤을 그려본다. 그 시절엔 ‘절도’라는 말보다 ‘서리’라는 너그러운 표현을 썼다. 서리를 하다가 들켜도 주인은 송사하지 않았다. 장난스런 정서쯤으로 여겼다. 배가 고파도 까치밥을 위해 감을 다 따지 않고 몇 개는 감나무 우듬지에 남겨 놓을 줄 알았던 그런 인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서로 아우르며 살았다. 지금은 부유한데도 분쟁은 더 많다. 가진 자의 돈을 조금만 훔쳐도 ‘서리’라는 용서보다 ‘절도’라는 미움으로 단죄한다. 그러나 서리가 죄가 되지 않았던 전설 같은 아름다운 시절이 내 유년에는 있었다.

 

  가난한 밥상에서 훌륭한 반찬이 되어 주었던 자운영의 아름다운 희생처럼 오늘 문득 따뜻한 사람들이 그립다. 나물로서 사명을 다한 자운영은 분홍빛 꽃을 피워 최후까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꽃씨를 남겼다. 너무도 가난해서 마음까지도 척박했던 내 유년은 자운영 꽃길이 있어서 행복했다. 해마다 들녘에서 만나는 자운영 꽃은 유년의 봄날을 회상하게 했다. 가끔은 나로 하여금 세상을 돌아보게 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도록 했다. 자운영 꽃이 만발할 때면 그 시절의 풋풋한 향기가 그리워 고향으로 달려간다.

 

  토담에 피어오른 아지랑이에 무심코 창문을 열었다가 꽃샘바람에 도로 창문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던, 그래서 늘 창문을 열까 말까 망설이게 하였던 봄, 그 봄날에 다시 한 번 자운영 서리를 해 보았으면…….


- 이 은 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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