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재천사의 작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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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화로 - 양주동

용재천사 - Ailes d'ange 2011. 4. 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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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화로



  촌가의 질화로는 가정의 한 필수품, 한 장식품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 그들의 사랑의 용로이었다. 되는대로 만들어진, 흙으로 구운 질화로는, 그 생김생김부터가 그들처럼 단순하고 순박하건마는, 지그시 누르는 넓적한 불돌 아래, 사뭇 온종일 혹은 밤새도록 저 혼자 불을 지니고 보호하는 미덥고 덕성스러운 것이었다. 갑자기 확확 달았다가 이내 식고 마는 요새의 문화 화로와는 무릇 그 본성이 다른 것이다.

이 질화로를 두른 정경은 안방과 사랑이 매우 달랐다.

 

  안방의 질화로는 비록 방 한구석에 있으나, 그 위에 놓인 찌개 그릇은 혹은 "에미네"가 "남정"을 기다리는 사랑, 혹은 "오마니"가 "서당아이"를 고대하는 정성과 함께 언제나 따뜻했다. 토장에 무를 썰어서 버무린 찌개나마 거기에는 정이 있고, 말없는 이야기가 있고, 글로 표현하지 못할, 개나마 거기에는 정이 있고, 말없는 이야기가 있고, 글로 표현하지 못할, 그윽하고 아름답고 정다운 세계가 있었다. 누가 식전의 방장을 말하는가. 누가 수륙의 향연을 이르는가. 진실로 행복된 점에 있어서야, 진실로 참된 정에 있어서야, 우리 옛 마을 집집마다 그 안방에 놓였던 질화로의 찌개만 하라.

 

  마을에서 소년은 "서당아이"라 불리었다. 혹은 사략 초권(初卷)을 끼고, 혹은 맹자를 들고 서당엘 다니기 때문이다. 아잇적, 서당에 다닐 때 붙은 서당아이란 이름은, 장가를 들고 아들을 본 뒤까지도 그냥 남아서, 삼십이 넘어도 그 부모는 서당아이라고 불렀다. 우리 집 이웃의 늙은 부부는 늦게야 아들 하나를 얻었는데, 자기네가 목불식정인 것이 철천의 한이 되어서, 아들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글을 시켜 보겠다고, 어려운 살림에도 아들을 서당에 보내고, 노상 "우리 서당애" "우리 서당애" 하며 아들 이야기를 했었다. 그의 집 단칸방에 있는 다 깨어진 질화로 위에, 점심 먹으러 돌아오는 예의 서당아이를 기다리는 따뜻한 토장찌개가 놓였음은 물론이다. 그 아들이 천자문을 읽는데, "질그릇 도, 당국 당"이라 배운 것을 어찌 된 셈인지 "꼬끼요도, 당국 당"이라는 기상천외의 오독을 하였다. 이것을 들은 늙은 "오마니"가, 알지는 못하나마 하도 괴이하여 의의를 삽(揷)한즉, 영감이 분연히, "여보 할멈, 알지도 못하면서 공연히 쓸데없는 소리 마소. 글에 별소리가 다 있는데, "꼬끼요 도"는 없을라고." 하였다. 이렇게 단연히 서당아이를 변호한 것도 바로 질화로의 찌개 그릇을 둘러 앉아서였다. 얼마나 인정미 넘치는 태고연한 풍경이냐.

 

  사랑에 놓인 또 하나의 질화로는 이와는 좀 다른 풍경을 보이었다. 머슴, 소배들이 모인 곳이면, 신삼기, 둥우리 만들기에 질화로를 에워싸 한창 분주하지마는 , 팔씨름이라도 벌어지는 때에는 쌍방이 엎디어 서로 버티는 서슬에 화로를 발로 차 온 방 안에 재를 쏟아 놓기가 일쑤요, 노인들이 모인 곳이면, 고담책보기, 시절 이야기, 동네 젊은 애들 버릇 없어져 간다는 이야기 들이 이 질화로를 둘러서 일어나는 일이거니와, 노인들의, 입김이 적어서 꺼지기 쉬운 장죽은 연해 화로의 불돌 밑을 번갈아 찾아갔었다. 그리하여, 기나긴 겨울밤은 어느덧 밝을 녘이 되는 것이다.

 

  돌이켜 우리 집은 어떠했던가? 나도 5, 6세 때에는 서당아이였고, 따라서 질화로 위에는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찌개 그릇이 있었고, 사랑에서는 밤마다 아버지의 담뱃대 터시는 소리와 고서 읽으시는 소리가 화로를 둘러 끊임없이 들렸었다. 그러나 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그 소리는 사랑에서 그쳤고, 따라서 바깥 화로는 필요가 없어졌고, 하나 남은 안방의 화로 곁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대학을 구수하시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마저 내가 열두 살 되던 해에 그 질화로 옆을 길이 떠나가시었다. 그리하여 서당아이는 완전한 고아가 되어, 신식 글을 배우러 옛 마을을 떠나 동서로 표박하게 되었고, 화로는 또 다시 찾을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과 함께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질화로의 찌개 그릇과 또 하나 질화로에 깊이 묻히던 장죽, 노변의 추억은 20년 전이 바로 어제와 같다.


- 양 주 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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