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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산골짜기 - 김유정

용재천사 - Ailes d'ange 2011. 4. 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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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산골짜기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20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삑 둘러섰고 그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속에 묻힌 모양이 마치 움푹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50여 호밖에 못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그러나 산천의 풍경으로 따지면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귀여운 전원이다. 산에는 기화요초로 바닥을 틀었고 여기저기에 졸졸거리며 내솟는 약수도 맑고 그리고 우리의 머리 위에서 골골거리며 까치와 시비를 하는 노란 꾀꼬리도 좋다. 주위가 이렇게 시적이니만치 그들의 생활도 어디인가 시적이다.......

 

  5월쯤 되면 농가에는 한창 바쁠 때이다. 밭의 일도 급하거니와 논에 모도 내야 된다. 

 그보다는 논에 거름을 할 갈이 우선 필요하다. 갈을 꺾는 데는 갈잎이 알맞게 퍼드러졌을때, 그리고 쇠기 전에 부랴사랴 꺾어내려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일시에 많은 품이 든다. 그들은 여남은씩 한 떼가 되어 돌려가며 품앗이로 일을 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일의 권태를 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일의 능률까지 오르게 된다.......

 

  그리고 산골에는 잔디도 좋다. 산비알에 포근히 깔린 잔디는 제물로 침대가 된다. 그 위에 바둑이와 같이 벌룽 자빠져서 묵상하는 재미도 좋다. 여길 보아도 저길 보아도 우뚝우뚝 섰는 모조리 푸른 산이매 잡음 하나 들리지 않는다.

  이런 산속에 누워 생각하자면 비로소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요히 느끼게 된다. 머리 위로 날아드는 새들도 갖가지이다. 어떤 놈은 밤나무 가지에 앉아서 한 다리를 바짝 들고는 기름한 꽁지를 휘휘 내두르며 '삐이죽! 삐이죽!' 이렇게 노래를 부른다......

 

  산골의 음악으로 치면 물소리도 빼지는 못하리라. 쫄쫄 내솟는 샘물 소리도 좋고, 또 촐랑촐랑 흘러내리는 시내도 좋다. 그러나 세차게 콸콸 쏠려내리는 큰 내를 대하면 정신이 번쩍난다. 논에 모를 내는 것도 이맘 때다. 시골서는 모를 낼 적이면 새로운 희망이 가득하다. 그들은 즐거운 노래를 불러가며 가을의 수확까지 연상하고 한 포기의 모를 심어나간다. 농군에게 있어서 모는 그야말로 자식과 같이 귀중한 물건이다. 모를 내고 나면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한 해의 농사를 다 지은 듯 싶다........

 

  이것이 5월 경의 산골의 생활이다. 산 한 중턱에 번듯이 누워 마을의 이런 생활을 내려다보면 마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물론 이지없는 무식한 생활이다마는 좀더 유심히 관찰한다면 이지없는 생활이 아니고는 맛볼 수 없을 만한 그런 순결한 정서를 느끼게 한다........


- 김 유 정 -
한국문학대전집 34권 <명작수필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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