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재천사의 작은세상

♣ 이탈리아/이탈리아 북부

산 마르코 대성당 제1편

용재천사 - Ailes d'ange 2010. 8. 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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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lica di San Marco

 

산 마르코 대성당 1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네치아의 상징인 산 마르코 대성당은 828년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인 성 마르코의 유체를 모시기 위해 건축되었다.

  

그 후 967년 화재로 유실되어 1063년부터 10년에 걸쳐 복원공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조화를 이룬 성당으로, 바깥 둘레는 330m이며

5개의 돔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 마르코 대성당은 2명의 상인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져온 성 마르코 유골의 납골당(納骨堂)으로 세워진 것(829~832)이다.

 

그 후 성 마르코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호성인(守護聖人)이 되었다.

 

11세기 말에 현재의 성 마르코성당이 재건되었는데 이 재건공사에 롬바르디아의 와 석공(石工)이 상부구조(上部構造) 건축에 참가했다.

 

건축양식은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그리스 십자형(十字形)의 바실리카 다섯 개의 동방(東方的)인 돔을 받치고 있으며, 파꽃형(蔥花形)아치와 고딕풍의 천개(天蓋)가 이어진 정면(파사드)을 가지고 있고,

아름다운 대리석 건축으로 황금빛의 배경을 지닌 모자이크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 성당 측면 모습

 

 

 

▲ 성당 정면 발코니의 네개의 브론즈 말 모습

(복제품이며 진본은 루브르에 있다)


 

마르코 성당이 재건되면서부터 도제(총독)를 비롯한 베네치아 시(市民)은 동방을 침략할 때마다 이 건축을 장식할 여러 가지 물건과 조상(彫像)·부조(浮彫) 등을

가져 오는 습관이 생겨 이 건물은 그런 것들로 장식되었다.

 

 

예컨대 정면 위의 회랑(回廊)에 놓여 있는 네 개의 브론즈 말(높이 1.6m)은 고대

그리스시대의 것으로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에 옮겨놓은

것을 1204년에 도제가 베네치아로 가져온 것인데, 이런 조상이나 부조들은 수없이 많다.

  

또 외부와 내부를 뒤덮듯 장식된 모자이크 벽화는 12~17세기에 계속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미술사적(美術史的)으로도 귀중한 자료로 되어 있다.

 

 

 

▲ 산 마르코 대성당 전경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성 마르코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전도 활동을 하던 중 회교도에게 죽음을 당했다.

 

그를 따르던 기독교인들은 그의 유해를 거두어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교회에 묻었다.

 

 

그 후 이슬람교의 칼리프(이슬람의 종교적 최고 권위자)가 궁전을 세우고자 하여

성 마르코의 무덤이 훼손될 위험에 처해졌다고 해여.....

 

 

마침 그곳에 있던 베네치아 상인들이 성 마르코의 유해를 옮길계획을 세웠다.

 

이때 많은 기적이 일어나 그들의 일을 도왔다고 해여.....


 

 

 

물에 잠겨 있는 산 마르코 대성당

 

 

성 마르코의 유해를 옮기는 날,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 회교도들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아 유해를 몰래 옮겨갈 수 있었다.

또 국경을 넘을 때 상인들이 성 마르코를 상자에 담고 회교도들이 혐오하는 돼지고기로 덮어 두자, 회교도들이 상자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그들을 쉽게 보냈다.


지중해를 건너 베네치아로 올 때는 순풍에 돛을 달고 일사천리로 어려움 없이 도착하였다.

 

 

 

▲ 바다쪽에서 바라 본 산 마르코 대성당 전경

 

마르코의 유해가 베네치아에 도착하자 총독은 유해를 자신의 성에 안치하고자 했다.


그러자 멀쩡히 있던 유해가 갑자기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겁에 질린 총독이 경의를 표하고 이 자리에 성당을 짓겠다고 맹세하자 그제서야

유해가 움직였다고 해여.....

  

그래서 그 자리에 탄생한 성당이 바로 산 마르코 대성당이다. 

 

 

 

▲ 황혼 무렵의 산 마르코 대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