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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세라뜨 수도원 1편

용재천사 - Ailes d'ange 2009. 1. 1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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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serrat

 

 

- 몬세라뜨 수도원 -

 

 

 

 

  

몬세라뜨 수도원은 스페인 동북부 카탈루냐주(Cataluna)의 험준한 바위산 몬세라뜨 산기슭에 솟아 있는 수도원으로서 산 중턱 723m 지점에 베네딕도회의 산타 마리아 데 몬세라트(Santa Maria de) 대수도원이 있고, 스페인 3대 순례지의 하나이다.


몬세라뜨(Montserrat)라는 이름의 뜻은 'Serrated Mountain', 즉 '톱니모양의 산' 이라는 뜻으로 첨봉(尖峰)이 연이어 있고 톱으로 썰은 듯한 거대한 바위기둥들이 기묘한 형상을 이루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서 그만큼 험준한 산에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들이 많다는 뜻이다.

해발 1,235m의 성 예로니모 봉이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몬세라뜨에 대한 가장 명확한 기록은 888년 십자군 전쟁 때 이 산에서 아랍인들과 전투를 벌인 위프레도(Wifredo) 백작이 산타 마리아 데 몬세라뜨 은수처에 대해 기록한 것이다.

 

그 후 1023년 위프레도 백작의 증손자 리폴(Ripoll) 신부가 은수처를 확장하여 수도원을 설립하였으며,  13세기 이후 카탈루냐 지방을 지배한 아라곤(Aragon) 왕국이 지중해 유역의 해상 패권을 차지하자, 몬세라뜨의 성모는 아라곤 왕국의 전 영토 내에서 국가의 수호자로 받아들여졌으며, 1409년에는 몬세라뜨 수도원이 대립 교황 베네딕도 13세 교황에 의해 독립된 수도원이 되었다.

 

 

 

1811년 프랑스의 나폴레옹군이 스페인을 침공하였을 때 저항 거점이었던 몬세라뜨 수도원은 괴되고 말았는데, 이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파견된 문타다스(Muntadas) 수도원장에 의해 오늘날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1936년 스페인 시민 전쟁 때에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약탈되면서 다수의 수도자들이 살해당하기도 하였는데, 수도원의 기능이 정상으로 회복된 것은 1939년 1월 공산당이 패망한 뒤였다. 다시 옛 영화를 되찾은 몬세라뜨 수도원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와 사라고사의 필라르(Pilar) 성당과 함께 스페인의 3대 순례지로 손꼽히고 있다.

  

  

15세기 들어 카탈루냐 지역의 정치 상황이 혼란스러워지자 몬세라뜨 수도원은 카탈루냐 독립군을 지원하였는데, 카탈루냐 독립군을 진압하고 스페인을 통일한 이사벨(Isabel)과 페르난도(Fernando) 국왕 부처는, 1943년 이 수도원에 거주하던 카탈루냐 출신 수도자들을 축출하고, 수도원을 왕립 발라돌리드(Valladolid) 수도원의 관리 하에 두었다.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수도원은 정치적 갈등의 영향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네로스(Garcia Jimenez de Cisneros) 같은 뛰어난 수도원장이 배출되어 수도원은 더욱 번창하였고, 순례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자 국왕은 몬세라뜨의 성모에 대한 신앙을 스페인의 새로운 식민지를 통치하는 구심점으로 활용하였고, 특히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자 몬세라뜨 출신의 보일 (Bernardo Boil) 신부를 그곳에 파견하여 신앙 전파에 힘쓰게 하였다.

보일 신부는 중남미에 파견된 첫 선교사였으며, 이후 몬세라트의 수도원은 중남미를 선교하는 중요한 거점 중의 하나가 되었다.

 

 

 

 

 

[김홍근 집필, 한국교회사연구소 발간 가톨릭대사전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