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재천사의 작은세상

♡ 프랑스/파리

노트르담 성당 1편

용재천사 - Ailes d'ange 2009. 2. 2. 21:23
728x90

 

Notre-Dame

 

- 노트르담 대성당 -

 

 

 

 

노트르담 대성당은 대표적인 중세 건축물로 고딕양식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서

세느강에 있는 배 모양의 시테 섬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서기 4세기경 가톨릭이 프랑스의 국교가 되면서 생테티엔(Saint Etienne) 성당을 세웠는데 이 성당이 노트르담 성당의 전신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으로의 개축 공사는 루이 7세 때인 1163년 주교 M.쉴리의 지휘로 건축이 시작된 이후 완공은 무려 200여 년이 흐른 1330년 경이었다.


 

 

노트르담 성당이 지어지던 고딕 양식 초기, 12세기는 유럽 안에 여러 가지 사건과 동요가 많았던 시기였다. 교황 그레고리 7세의 개혁으로 교회는 큰 변화를 맞았다.

 

수도원은 학문과 창작의 중심이 되었고, 십자군들은 이슬람으로부터 성스러운 도시 예루살렘을 되찾아오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교회와 사원이 프랑스 북부의 몇몇 도시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발전'의 시기였고, 파리에는 주변의 다른 작은 도시들보다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인상적인 성당이 필요했다.

 

 

루이 7세는 파리에 새로운 성당 건립을 추진했고, 헌신적으로 이를 지원했다.

그는 강한 가톨릭국가로서 프랑스의 모습을 보여 주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18세기 프랑스혁명 때 건물이 심하게 파손되었으나 19세기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마친 800년의 프랑스 역사가 담긴 성당이기도 하다.

  

 

노트르담 성당은 여러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가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1430년에는 영국왕 헨리 6세의 즉위식이 있었고, 나폴레옹의 대관식(1804),

파리 해방을 기념하는 미사(1944.8.26), 드골 추모 미사 (1970.11.12) 등이

이곳에서 행해졌다. 

 

 


19세기 중반, 로맨틱 열정이 프랑스 전반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노트르담 성당에 대한 진지한 복원 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한다. 로맨틱 시대의 핵심은 현 시대보다 훨씬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과거 문명에 대한 찬미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성당 복원에 불을 지피게 된 한 젊은 작가의 

소설이 있었으니....ㅡ_ㅡ??


그 소설 이름은   → 

                      →

                      → 

                      →

                     

                      → 

                      → 

                          '노트르담의 꼽추'


빅토르 위고는 28세때, 그의 유명한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를 썼다.


(원제: Notre-Dame de Paris) 노트르담의 종지기 꼽추 콰지모도와 아름다운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를 향한 그의 불행한 사랑이야기이다.

  

 

1831년에 출간된 ‘노트르담의 꼽추’는 젊은 작가의 눈을 통해 중세 성당은 '돌로 만들어진 책', 값어치 있고 존중해야 할 자산임을 알려 준다.


그는 이 소설에서 여러 세기 동안 노트르담에 대해 보여졌던 경멸과 냉대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는다.


그가 예상치 못했던 것은 이러한 메시지에 대한 그 시대 대중들의 따뜻한 관심이었다. 이 소설은 폭 넓은 지지를 얻었으며 성당 파괴에 대한 관심과 복원 사업의 공감대를 만들었다.

 

 

 

위고의 소설에 영향받은 독자들 중에는 건축 학교에 막 입학한 유진 에마뉴엘 비올레 르 덕(Eugene Emmanuel Viollet-le-Duc)이라는 젊은이도 있었다.


그는 파리의 오래된 건축물들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십자군을 자청했고,

특히 노트르담 복원 사업은 그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핵심적인 업적이 되었다.

 

 

 


 

2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