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알뜰이는 골무를 깁고 냉이를 캐는 시골 처녀였다. 집안끼리 공인한 사랑이건마는 손목 한 번 숫제 쥐어 보지 못하고 연이는 딴 데로 시집을 갔다. 마을 부인네들의 산놀이에 30리 거리를 두고도 우리집 마루에서 나는 연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시력의 한계를 지난 또 하나의 눈―, 그토록 젊은 순정을 기울였던 연이를 내 아내로 맞아들이지 못한 원인은 내게 있지 않고 연이가 저지른 작은 과실 때문이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동경 거리에서 연이의 오빠인 I를 만났다. 그 입으로 연이가 도요하시(豊橋)에 산다는 것, 그 남편이란 사람이 첩을 둘씩이나 거느린 위인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상은 물을 용기도 뱃심도 없었거니와 내가 상상하는 연이의 생활이란 그리 행복된 것이 아니었다. 애처롭고 측은한 생각― 그보다도 아쉽고 그리운 못난 마음에 나는 그 후 도요하시를 지날 때마다 찻간에서 내려서 플랫폼을 한번 거닐지 않고는 못 배기는 버릇이 들었다. 어쩌다가 잠든 사이에 도요하시를 지나는 수가 있으면 나는 죄를 지은 것처럼 송구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해방되던 그 해까지 내 이 슬프도록 쑥스러운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몇 해 만에 진해에 들러 연이 오빠 댁에서 저녁 대접을 받게 되었다. 2층에 바둑판을 놓고 연이 오빠와 나는 마주 앉았다. 그 부인은 내 옆에서 과일을 벗긴다. 부엌에서 들려오는 또닥 또닥하는 도마 소리, 해방이 되어 연이도 친정으로 돌아온 것이라면, 아마 오빠댁 이웃에 살기도 쉬우리라……. 저 도마 소리가 혹시나……? 그 때 남편이 측간에 간 새 그 부인의 입으로 연이가 스물 여섯 되던 해 일본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무슨 병이던가요?" "병이라니요, 한(恨)이 죽였지요, 아까운 사람이……." 그러면서 휘이 하고 한숨을 쉬는 그 올케 앞에서 나는 몰래 무엇을 훔치다 들킨 놈처럼 당황했다. ‘스무 해가 지나도록 죽은 것을 모르고 센티멘털을 자독(自瀆)하던 이 싱겁고도 얼빠진 바보 녀석아…….' 나는 주릿대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찔했다. 도요하시의 텅 빈 플랫폼 그―, 밤중의 플랫폼이 파노라마처럼 나를 비웃으며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 주릿대 : 형구의 하나. 주리를 틀 때 쓰는 두 개의 붉은 막대. - 김 소 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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