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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톱밥난로 - 이정하

용재천사 - Ailes d'ange 2011. 3. 3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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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톱밥난로



춥다. 옷을 두껍게 입었는데도 춥다면 그것은 마음이 추운 탓이다. 아무리 내의를 입어 본들 사랑의 내의를 갖춰 입지 않았다면 우리는 추울 수밖에 없다.

 겨울이 닥치면 사람들은 저마다 부산하다.

 하지만 난로를 몇 개 더 들여놓는다고 해서 추위가 가실 것인가. 난방시설이 아무리 좋기로서니 겨울이 혹독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다. 마음이 춥다면 몸은 더욱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법, 그것만이 겨울을 온전하게 날 수 있는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작정 이불 속으로만 파고든다. 나만 춥지 않다고 해서 춥지 않은 것인가. 그것도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이 춥다면 나도 추울 수밖에 없다. 나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그렇다. 추운 겨울엔 더더욱 마음을 열어야 한다.

 마음을 넓게 열어 나보다 훨씬 더 추운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그 관심과 사랑으로 인해 상대방은 물론 나 자신 또한 더없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거리에서 신문을 파는 가난한 소년이 있었다.

 매서운 바람이 쌩쌩 부는 어느 추운 겨울날에도 소년은 변함없이 신문을 팔고 있었다. 그러나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그런지 사람들은 집게 가는 걸음만 재촉할 뿐 신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소년의 뺨은 얼어붙어 터질 듯했지만 소년은 신문 팔기를 멈출 수 없었다. 집에선 자신을 기다리는 배고픈 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같은 날이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부모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지금쯤 따뜻한 방에서 재롱을 부릴 나이었지만 그 소년은 이를 악물고 신문을 한 장이라도 더 팔기 위해 애를 쓴다. 그 때 문득, 소년 옆을 지나치던 할아버지 한 분이 멈춰 서서 소년을 불렀다. 그는 신문값보다 많은 지폐 한 장을 꺼내 주며 소년의 손을 잡았다.

 

 "이런, 손이 다 얼어 버렸네. 몹시 춥겠구나." 할아버지의 손은 따스했다. 그러자 소년은 환히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이젠 춥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관심이, 그 사랑으로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 따스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 훈훈한 미덕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지탱되어 왔고, 또 지탱되어 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마음의 문을 닫아 두기 시작했다. 내 눈에 다래끼 난 것은 아파도 남의 눈에 종기 난 것은 아파하지 않고 있다. 나만 탈이 없으면 그뿐 남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함께 길을 걸어가는 동반자로서의 '우리'가 아니라 내가 짓밟고 일어서야 할 '남'만 존재하고 있다. 때로 친구의 우정어린 충고나 격려가 있어도 뿌리치기 일쑤다.

 

 무슨 흑심이나 있지 않을까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하며, 뒤로는 그 친구보다 한 발짝 더 앞서기 위하여 신발끈을 동여매고 있다. 남을 위해 발길에 채는 돌멩이 한번 집어 낸 적 없으며 앉아 쉴 수 있는 의자 한 번 마련해 준 적 없다. 그러니 동료도 없고, 친구도 없고, 우리 마음이 추울 수밖에.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자. 아무리 난방시설이 잘 되어 있고 좋은 곳이라 하더라도 자기 혼자밖에 없다면, 그 덩그런 곳에 오로지 자기 혼자만 살고 있다면 그 삶은 쓸쓸하고 외롭지 않을까. 어린 날에 읽었던 동화 속의 얘기처럼 아이들이 찾아오지 않는 거인의 집에는 혹독한 겨울만 계속될 뿐이다. 그러니 우리 더 이상 추워지기 전에 마음을 열자. 대문을 열고 아이들을 맞이했더니 금세 그 집 마당에 봄이 온 것처럼, 우리도 문을 열어 내 마음을 나눠 줘 보자.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따스한 것인지 느껴 보자.

 

 브라질 작가 바스콘 셀로스의 작품『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는 '제제'라는 주인공 소년이 나온다.

 그 소년은 너무 못 먹고 자라서 키가 작았다. 학교에 들어갔지만 도시락 한 번 싸 가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은 이 불쌍한 소년에게 가끔 동전을 주었다. 빵이라도 사먹어서 허기를 면하라고 말이다. 하지만 준다고 해서 소년은 돈을 다 받는 게 아니었다. 애써 사양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그 돈을 받곤 했다. 그 이유를 선생님은 곧 알게 된다. 자기 반에는 그렇게 밥을 못 먹는 가난한 아이가 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제제가 돈을 줄 때마다 빵을 사서 그 가난한 아이와 함께 먹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아이는 제제보다 더 작고, 가난하고, 아무도 놀아 주지 않는 아주 새까만 흑인아이었다. 그러나 제제는 자기가 배가 고픈데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더 가난한 그 아이에게 빵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함께 놀아 주었다.

 

 살아가는 데 유일한 가난함이란 가슴 속에 사랑이 없는 것이리라. 삶이 사랑으로 가득 채워졌을 때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나날들이 된다. 그러고 보면 베푼다는 것은 꼭 많이 가진 자만이 행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제제라는 소년은 도시락도 못 싸 갈만큼 가난했지만 자기보다 더 가난한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기꺼이 빵 한 조각을 나눠 먹었다. 없는 사람이, 그리고 적은 것이라도 베푸는 행위는 있는 사람의 그것보다 훨씬 더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아닐까. 혹시 나는, 나한테 필요없는 것까지도 꽉 움켜쥐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 살펴보자.

 나한테 필요없는 그것이 꼭 필요한 사람은 세상에 얼마든지 많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나한테는 하등 소용없는 그 물건을 이제 그만 넘겨줌은 어떨런지? 내게는 조금 모자라더라도 하나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약간 나눠줌은 어떨런지?

 그래, 세상은 그렇게 사는 것이다. 바닷가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서로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 그래야 아름답다. 그래야 외롭지 않다. 서로 도와가며 사는 세상, 어깨를 부여 안고 서로 의지하며 사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보여 주려고 신은 우리에게 겨울을 내려 주었다.

 

 겨울이 왜 춥겠는가. 서로 손을 잡고 살라고 추운 것이다.


- 이 정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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