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schwitz
-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
"인류 최대 비극의 현장,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안녕하세염.....^^
오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악명높은 유대인 말살정책으로 대량학살이 이루어
졌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그 가슴 아픈 현장을 두 눈으로 똑똑히 살펴보겠
습니다.
▲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입구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폴란드 크라코프 서쪽으로 61㎞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원래 지명은 폴란드어로 '오쉬비엥침'(Oswiecim)이라고 하는데, 나치가 폴란드
를 점령한 후 아우슈비츠라는 독일식 지명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그래서 폴란드 사람들은 이곳을 오쉬비엥침이라고 하지 않고 아우슈비츠라고
부르는 것을 무척 싫어합니다.
▲ 'ARBEIT MACHT FREI'
수용소 정문에는 'ARBEIT MACHT FREI' 라는 문구가 아치형으로 걸려 있습니다.
"일을 하면 자유로워진다"
한번 들어가면 죽어서 화장터의 연기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ㅡ_ㅡ;;
죽도록 강제노동을 하고 죽어서 화장터 굴뚝의 연기로 사라지면 자유로워진다는
말인가.....ㅜ_ㅡ;;
▲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모습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22개의 강제수용소가 독일, 폴란드 등에 있었는데,
아우슈비츠는 가장 규모가 크고 악명 높은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였습니다.
이 수용소에서 가스, 고문, 총살, 질병, 굶주림으로 11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ㅡ_ㅜ;;
물론 유태인이 대부분이었지만 나치에 반대하는 지식인, 종교인 등 많은 사람
들이 혹독한 강제노동과 굶주림으로 죽어갔던 곳이죠.
우리에겐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이 된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로 더 잘
알려 진 곳입니다.
▲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철조망
군데군데 기관총이 설치된 감시탑이 있고, 밤이면 닿기만 해도 즉사하는 고압
전류가 흐르며, 이 철조망에 5m이상 접근하면 무조건 기관총으로 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 아우슈비츠의 삼엄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이중 철조망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시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수용소 사이의 철조망과 가운데 경비병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이 나있습니다.
1939년 9월 독일군은 폴란드를 단 2주만에 점령하였습니다.
나치는 인구 5만명의 작은 공업도시 오쉬비엥침에 폴란드 점령에 위협이 되는
폴란드 정치범을 수용하기 위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건설하게 됩니다.
1940년 봄, 가시철조망과 고압전류가 흐르는 울타리, 기관총이 설치된 감시탑을
갖춘 공포의 강제수용소가 건설됩니다.
그리고 친위대 소속 아돌프 헤스 대위가 수용소 소장으로 임명됩니다.
▲ 고압전류 경고판
지금은 고압전류가 흐르지 않지만 손을 대면 고압전류에 감전되어 버릴 것 같은
기분입니다.
이곳을 탈출하려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요.....ㅜ_ㅜ;;
이중 고압전류 철조망과 붉은 벽돌 건물이 자아내는 정경은 음산하기 이를 데 없습
니다.
1940년 6월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고, 1941년 히틀러의 명령으로
대량학살시설로 확대되었습니다.
1941년 가을부터 1942년 봄까지 총으로 사살하기 보다는 한꺼번에 대량학살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게 됩니다.
▲ 철조망과 해골 모양의 일단 정지 표지판
새로운 방법이란 사람 몸에 기생하는 이, 해충 등 박멸에 사용하는 자이클런-비
(ZYKLON -B)를 이용하게 됩니다.
밀폐된 용기에서 자이클런-비를 꺼내는 순간 인체에 치명적인 맹독성 시안화수소가스가 방출되기 때문입니다.
밀폐된 공간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천장이나 벽에 뚫린 구멍으로 자이클런-비 를
뿌리면 독가스가 발생되어 곧 처절한 비명과 함께 죽게됩니다.
▲ 아우슈비츠Ⅱ라고 불리는 바케나우 수용소
한편, 1941년 10월에는 수용소에서 3㎞ 떨어진 곳에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바케나우 수용소(BIRKENAU)를 새롭게 건설합니다.
그 당시 세계사적으로 보면,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진주만 공격을 감행하고,
이를 계기로 히틀러도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하게 됩니다.
▲ 아우슈비츠Ⅱ 바케나우 수용소‘죽음의 문’입구
1942년 봄부터 유럽각지에서 유대인들이 압송되어 오기 시작하였고, 대학살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임상실험을 거쳐 1943년 봄부터는 독가스에 의한 본격적인 사상 최대의
학살현장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열차로 실려 온 사람들 중 쇠약한 사람이나 노인, 어린이들은 곧바로 공동샤워실로
위장한 가스실로 보내 살해되었습니다.
바케나우 수용소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등장합니다.
기차에 실려 온 유대인들이 저 철길을 거쳐 죽음의 문을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었습니다.
▲ 수용소 내부 모습
어두컴컴한 실내와 닭장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침상모습입니다.
여기에 들어와보니 여러 가지 우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억울하게 숨져간 영혼들이 이곳에서 고단했던 삶을 살았다는 생각에 차마 셔터를
누를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 벽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침상 모습
벽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침상에서 포로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과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암담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 가스실 모습
이곳이 유태인들을 학살했던 악명높은 개스실 건물입니다.
이곳으로 끌려오는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당하는 공포의 건물입니다.
붉은 벽돌로 된 28동의 수용소에는 유대인을 처형했던 가스실과 처형당한 사람
들의 사진, 시체를 태웠던 소각장과 가스실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비극의
역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 가스실 내부 모습
포로들을 개스실에 넣고 육중한 철문을 닫으면 스프링클러에서 자이클런-비 독가스가 뿜어지게 됩니다.
가스실 안에는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꽃다발이 놓여 있습니다.
▲ 소각로 모습
가스실 옆방은 시체를 불태우던 소각로가 있습니다.
가스실에서 죽은 사람을 바로 옆방에서 화장한 것입니다.
▲ 희생자들의 신발과 소지품 모습
이곳에서 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만 했는지, 어떤 처참한 생활을 했는지 입을
다물 수 없습니다.
당시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안경, 신발, 사진 등이 헝클어진 채 전시돼 있으며,
머리카락, 칫솔, 아기 우유병 등이 남아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고, 분위기는 더욱
침울하게 됩니다.
그 보다 더 놀라게 하는 것은 희생자들이 머리카락을 쌓아 놓은 곳이었는데 머리
카락 색이 모두 희뿌연 색입니다.
독가스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머리카락이라 그렇다고 합니다.
그 옆에는 머리카락으로 만든 원단을 보면서 인간의 잔혹함이 어디까지일까 하는
생각에 기분은 점점 더 우울해져 갑니다.
▲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안내판
그 당시 강제노동을 하는 포로들의 모습입니다.
▲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안내판
1944년 8월 2일 밤
이날 밤은 아우슈비츠 역사상 가장 끔찍한 밤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나치는 집시를 반사회적인 위험한 종족으로 여겨 집시 2만여명을 그 날 밤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게 된 것입니다.
▲ 수용소 책임자를 처형 했던 교수대 모습
1945년 1월 27일,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게 됩니다.
나치는 대량학살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막사를 불태우고 건물을 파괴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이 예상보다 빨리 수용소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수용소 건물과 막사
의 일부가 남았고, 포로 2,3천명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들은 몸이 아픈 사람들로서 미쳐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책임자를 교수대에 처형했다고 해서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
과 가족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될까요.....
▲ 자료사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7년 폴란드의회에서는 이를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희생자를 위로하는 거대한 국제위령비를 바케나우에 세웠으며, 수용소 터에 박물관을 건립하였습니다.
또한 나치의 잔학 행위에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유네스코는 1979년
아우슈비츠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습니다.
▲ 자료 사진
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는 나치 독일에 학살된 50만 유대인의 위령비(사진)가 있는 폴란드 바르샤바를 찾았습니다.
그는 겨울비가 내리는 위령비 앞에 무릎을 꿇고 나치의 만행을 깊은 사죄를 표명
하였습니다.
이 장면은 독일의 반성과 진정성을 마침내 세계가 인정하는 계기를 만들었던 유명한 장면입니다.
이를 계기로 브란트 수상은 유럽인들의 암묵적 용서하에 독일통일의 초석을 굳건히
다질 수 있었습니다.
▲ 현재의 위령비 모습
오늘은 겨울비가 내리지도 않고 위령비 앞에 무릎을 꿇고 나치의 만행을 사죄하는
그때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대로 된 반성의 뜻을 표하지 않고 있는 뻔뻔스러운 일본인들과 비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본의 반인륜적 군국주의는 동아시아 전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을 뿐만 아니라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14명을 군신(軍神)으로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오늘도 총리를 비롯한 일본지도자들이 참배하여 한국과 중국 등 주변 국가에게 엄청난 고통과 반발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운영에 따른 모든 비용은 독일 측에서 부담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과거에 대한 반성과 속죄의 의미일 것입니다.
비슷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일본과 독일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아우슈비츠의 날씨는 무척 좋았습니다.
그러나 파란 하늘에 비치는 햇살이 상쾌하기 보다는 지붕위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가 음울한 느낌을 주는 것은 왜 그럴까요.
또한 수용소를 나올 때 머리가 아프고 발걸음이 무거웠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지금까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우울한 하루였습니다.
'◈ 기타유럽국가 > 영국, 폴란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학살극이 벌어진 곳, 아우슈비츠 (0) | 2010.10.31 |
---|---|
런던성 4편 - 헨리 8세 이야기 (0) | 2010.08.06 |
런던성 3편 - 영화 '천일의 앤' (0) | 2010.08.06 |
런던성 2편 - 영화 '천일의 스캔들' (0) | 2010.08.06 |
런던성 1편 - 피의 역사가 얼룩진 곳 (0) | 2010.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