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당 내부 모습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527~565년)는 잃었던 로마제국의 땅을 회복하는 정책을 썼는데 라벤나는 되찾아야 할 땅 제 1호였다. 그는 라벤나를 제국의 영토로 만든 후 그곳에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를 짓도록 명령했다. 바로 성 비탈레 성당이다.
이탈리아 라벤나에 있는 성 비탈레 성당은 유스티아누스 황금시대인 526-547년에 건축된 성당으로서 외부장식은 거의 없으나 내부는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있다.
오늘날까지 모자이크가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6세기 동로마제국의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
▲ 제대 위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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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 좌측에 있는 유스티아누스 황제 모자이크
제대 양쪽에 있는 유스티아누스와 테오도라의 모자이크는 비잔틴 미술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6세기 모자이크 예술의 기념비적인 최고 걸작이다. 제대를 중심으로 왼쪽에 신하와 성직자, 시녀들을 거느린 유스티아누스 황제와 황후 테오도라가 미사에 참석하고 광경을 모자이크한 것으로서 새로운 인간미의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교회의 제대 위쪽에 자신과 황후 테오도라가 각각 참모들을 동행하여 그리스도께 예물을 바치는 모습을 모자이크로 제작하게 했다. 자신은 빵이 담긴 바구니를 든 모습으로, 그리고 부인은 포도주잔을 들고 있는 모습인데 신이나 성인에게만 표시하는 후광까지 그려 넣게 했다. |
▲ 중앙에 빵이 담긴바구니를 들고 있는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로마법전을 집대성하고, 동로마를 부흥시킨 황제로 알려져 있다.
▲ 제대 우측에 있는 황후 테오도라 모자이크
황제 부부는 한 번도 라벤나에 와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교회에서 가장 잘 보이는 부분에 자신의 모습을 보이게 함으로써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했다. 백성들에게 통치자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것이다.
다만 그는 비록 정치적 선전이긴 했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예술품을 통해 목적을 달성했다. 그래서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곳의 모자이크는 진귀한 비잔틴 양식의 대표적인 예술품으로서 전세계의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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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에 포도주잔을 들고 있는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황후 테오도라
황후 테오도라는 왕관과 보석, 그리고 두광에 의해 다른 인물들과는 다른 세계의 선택된 존재임을 유감 없이 보여준다. 특히 비천한 콘스탄티노플 경기장의 무희(舞姬) 출신의 데오도라는 뛰어난 방중술과 담대함으로 그시대의 남자들을 사로잡고 마침내 황후가 되었으며, 532년 동로마에 반란이 일어났을 때, 황제는 제위를 포기하고 도망치려 하였으나 도망가려는 남편을 결연히 붙들고 설득하여 맞서게 하였다고 한다.
다른 황제 때와는 달리 황후가 특별히 다루어진 것도 그러한 정치적 위치 때문일 것이다. 이 성당에서 남편과 동등한 지위에 새겨지는 것도 당연하였을 것이다. 이로써 그녀의 이름은 산 비탈레 성당 모자이크의 아름다움 만큼이나 오래가는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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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비탈레 성당의 야경 모습 |
<고종희교수의 '이탈리아예술산책' 중에서 일부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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