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꽃 - 이원수
무르녹는 듯한 봄날에 어우러져 피는 벚꽃이나 복숭아꽃도 아니요, 더구나 의젓한 자태를 자랑할 수 있는 모란이나 작약같이 남의 눈을 끌 수 있는 것은 더구나 아닌, 조그만 풀꽃이다. 하필 이름이 오랑캐꽃일까! 자줏빛 작은 꽃은 마른 풀잎 새로 가냘픈 줄기를 뽑아 올려, 아가씨처럼 고개 숙이고 피어 있다.
겨울에 시달리면서 봄을 기다린 어린 이 꽃은, 지금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그 첫 봉오리를 피웠을 것인가! 가느다란 꽃줄기와 조그만 꽃잎 속에 서린, 봄에 대한 강렬한 의망이 기특하다. 언 땅에서 견디어 낸 작은 뿌리의 힘과 의지가 대견하다.
봄에 피는 꽃이나 풀이 특히 귀여운 것은 이렇게 모진 추위를 이기고 나오는 까닭일 것이다. 일 년 내내 봄철이라면 초목의 귀함이 이렇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추위를 겪은 다음의 따스함이기에, 그 봄이란 것이 반갑고, 눈얼음 속에서 다기 살아나 피었기에, 봄의 꽃은 한결 더 사랑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감격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곤란을 뚫고 살아가는 것에서 느끼는 마음, 그것에 기울이는 애정……. 그런 마음에서 오는 감격이 저기에는 있다.
나는 꽃을 볼 때마다. 항상 소년 소녀 들을 생각한다. 인간 사회에서의 꽃은 그들이기 때문이다. 소년 소녀 들아! 너희들은 눈보라치는 겨울을 겪고 나온 저 오랑캐꽃처럼, 온갖 고통을 뚫고 자라나고 있다. 전쟁도, 가난도…… 다 견디고 이기고, 깨끗이 피어나는 까닭에, 나는 너희들을 좋아한다. 슬픔도 고통도 모르고 자라난 사람은 행복하다고는 하려니와, 값있는 삶을 모르는 법이다. 쑥쑥 자라서 찬란히 꽃 피어라!
오랑캐꽃 한 송이를 들여다보고 앉아서, 나는 일어설 줄을 모르고 있다. 조그만 꽃 속에 귀여운 얼굴이 보여 진다.
아! 정말 봄이 왔다. - 이 원 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