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재천사 - Ailes d'ange 2011. 4. 5.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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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꽃



  옷 벗은 나뭇가지에는 아직 잎이 피지 않았는데, 길가 마른 잔디 속에 꽃이 피었다. 그건 화려한 꽃도 아니요, 지극히 작고 빈약한 꽃이다.

  무르녹는 듯한 봄날에 어우러져 피는 벚꽃이나 복숭아꽃도 아니요, 더구나 의젓한 자태를 자랑할 수 있는 모란이나 작약같이 남의 눈을 끌 수 있는 것은 더구나 아닌, 조그만 풀꽃이다.

  하필 이름이 오랑캐꽃일까! 자줏빛 작은 꽃은 마른 풀잎 새로 가냘픈 줄기를 뽑아 올려, 아가씨처럼 고개 숙이고 피어 있다.

 

  겨울에 시달리면서 봄을 기다린 어린 이 꽃은, 지금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그 첫 봉오리를 피웠을 것인가! 가느다란 꽃줄기와 조그만 꽃잎 속에 서린, 봄에 대한 강렬한 의망이 기특하다. 언 땅에서 견디어 낸 작은 뿌리의 힘과 의지가 대견하다.

 

  봄에 피는 꽃이나 풀이 특히 귀여운 것은 이렇게 모진 추위를 이기고 나오는 까닭일 것이다. 일 년 내내 봄철이라면 초목의 귀함이 이렇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추위를 겪은 다음의 따스함이기에, 그 봄이란 것이 반갑고, 눈얼음 속에서 다기 살아나 피었기에, 봄의 꽃은 한결 더 사랑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감격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곤란을 뚫고 살아가는 것에서 느끼는 마음, 그것에 기울이는 애정……. 그런 마음에서 오는 감격이 저기에는 있다.

 

  나는 꽃을 볼 때마다. 항상 소년 소녀 들을 생각한다. 인간 사회에서의 꽃은 그들이기 때문이다.

  소년 소녀 들아! 너희들은 눈보라치는 겨울을 겪고 나온 저 오랑캐꽃처럼, 온갖 고통을 뚫고 자라나고 있다.

  전쟁도, 가난도…… 다 견디고 이기고, 깨끗이 피어나는 까닭에, 나는 너희들을 좋아한다. 슬픔도 고통도 모르고 자라난 사람은 행복하다고는 하려니와, 값있는 삶을 모르는 법이다. 쑥쑥 자라서 찬란히 꽃 피어라!

 

  오랑캐꽃 한 송이를 들여다보고 앉아서, 나는 일어설 줄을 모르고 있다. 조그만 꽃 속에 귀여운 얼굴이 보여 진다.

 

  아! 정말 봄이 왔다.


- 이 원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