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학살극이 벌어진 곳, 아우슈비츠
Auschwitz
-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학살극이 벌어진 곳, 아우슈비츠"
안녕하세염.....^^
나치 정권이 그토록 많은 유대인을 죽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불행했던 지난 역사들을 잠깐 알아보기로 해요.....
▲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입구
지금의 이스라엘 민족인 유대인.
약 2000년 전, 이스라엘 민족은 아랍인들의 침공으로 조국을 쫓겨난 이후 뿔뿔이
흩어져 조국이 없는 민족으로 세계 방방곡곡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전 유럽뿐 아니고 세계 어느 곳이고 유대인이 흘러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민족이고 자기 나라에 흘러온 다른 민족인 유대인을 반겨 줄 리가 없었
습니다.
조국이 없는 유대인. 그리고 다른 민족의 텃세와 미움을 받게 되어 서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도 살아야 했고, 살기 위해 믿을 것은 ‘돈’ 이었습니다.
▲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유대인들의 악착같은 삶의 노력은‘돈’에 대한 집념을 낳았고, 또 유능한 장사 수단
을 낳았으며, 번 돈을 결코 함부로 쓰지 않는‘구두쇠’가 되었습니다.
다른 민족은 유대인이 자기 나라에 와서 부자가 되는 것을 보고 어느나라 사람이건
즐거워 했을 리가 없었죠.....
유대인은 어느 곳에서나‘노랭이 장사꾼’으로 불리워지고 미움의 대상이 되었던
겁니다.
▲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유대인의 장사 수완이 어느 정도로 뛰어났느냐 하면,
1933년 독일 전체 인구 가운데 약 3%가 유대인이었는데 그들이 독일경제에서
차지한 비율은 무려 40%나 되었다고 해요.
쉽게 말해서 모두 100개의 빵 가운데 3명의 유대인이 40개를 차지하고 97명의
독일인이 60개의 빵을 차지한 셈이었죠.
즉, 한명의 유대인이 13개의 빵, 한명의 독일인이 반 개의 빵을 차지한 셈이니까
유대인이 독일인보다 훨씬 잘 살았다는 애기가 되는 거죠.
▲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유럽은 여러 나라가 다닥다닥 붙어, 인종과 피가 많이 섞였으나, 독일은 그 가운데
서도 비교적 순수한‘게르만’의 피를 가진 단일 민족이었습니다.
단일민족인 만큼 자기 나라에 들어와 마구 돈을 벌어들이는 유대인을 미워한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인 독일이 실업자와 굶주림으로 괴로워할 때, 불과
3%도 안되는 유대인들은 중요한 은행, 기업, 언론, 수솟기관등의 경영권을 돈으로
차지하고 막대한 돈을 배경으로 독일정치까지 은근히 간섭하게 되었습니다.
▲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이때 들고 일어선 사람이 바로 '아돌프 히틀러' 였습니다.
그는 1차 대전에 패망한 독일의 위기를 건지는 방법의 하나로 유대인을 몰아낼 것을
외쳤습니다.
순수 민족, 우수한 민족에서 유대인을 몰아내야 한다!
유대인들은 우리들의 일자리를 뺏고 우리들이 차지할 수입을 가로채며 우수 민족인
'아리안'의 피를 더럽히고 있다. 이 땅에서 모든 유대인을 몰아내자 !
히틀러의 외침은 패전 후 실망에 빠진 독일 국민의 분노를 유대인에게 돌리는 데
충분했고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면서 유대인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이 시작
되었습니다.
▲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유대인 추방 운동은 유대인을 아주 없애버리는 정책이 되어 유대인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조리 강제 수용소에서 굶주림과 고된 노동으로 수없는 생명이 숨져 가기 시작했고,
나치에 의해 목숨을 잃은 유대인이 자그마치 80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다만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죄 없는 800만명의 유대인이 어른, 어린이 할 것 없이 죽음을 당한 우리 인류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사건이었습니다.
▲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지금부터 60여 년 전.....
전 세계를 휩쓸던 바람.....
'우리 민족이 전세계 제일이다. 내가 잘살기 위해선 남을 잡아 먹어도 좋다.
강한 자만이 이 세상에 살아 남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총과 칼로 약한 자를 무참히 짓밟던 시절의 산 증거.....
그것이 바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