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 노천명 詩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리..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7 2010.05.06
겨울밤 - 박용래 詩 -겨울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 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 박용래 詩 - (시집 "강아지풀", 1975)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2 2010.05.06
향수 - 정지용 시 -향수(鄕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워 고이..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10 2010.05.05
해질 무렵 어느날 - 이해인 詩 - 해질 무렵 어느날 - 꽃 지고 난 뒤 바람 속에 홀로 서서 씨를 키우고 씨를 날리는 꽃나무의 빈집 쓸쓸해도 자유로운 그 고요한 웃음으로 평화로운 빈 손으로 나도 모든 이에게 살뜰한 정 나누어 주고 그 열매 익기 전에 떠날 수 있을까 만남보다 빨리오는 이별앞에 삶은 가끔 눈물겨워도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10 2010.05.05
옷을 벗는 나무들 - 신현봉 시 - 옷을 벗는 나무들 - 나무들이 새잎을 피워 송충이들에게 내어줍니다 햇빛과 비바람에 순종하며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산새와 곤충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보금자리가 되어줍니다 남의 자리를 훔쳐보는 일 없이 언제나 제자리를 지킵니다 다정한 이웃들과 어울려 밤이면 별빛을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6 2010.05.04
새벽 창가에서 - 이해인 詩 -새벽 창가에서- 하늘 그 푸른 둘레에 조용히 집을 짓고 살자 했지 귤빛 새벽이 어둠을 헹구고 눈을 뜨는 연못가 순결은 빛이라 이르시던 당신의 목소리 바람 속에 찬데 나의 그림자만 데리고 저만치 손 흔들며 앞서 가는 세월 나의 창문엔 때로 어둠이 내렸는데 화려한 꽃밭에는 비도 내..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0.05.04
가난한 새의 기도 - 이해인 詩 -가난한 새의 기도-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주십시오 가진 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주십시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1 2010.05.04
봄 편지 - 이해인 詩 -봄 편지-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없는 풀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힌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두 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 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4 2010.05.04
민들레의 영토 - 이해인 詩 -민들레의 영토-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太初)부터 나의 영토(領土)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人情)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4 2010.05.04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 이해인 詩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7월은 나에게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 고요히 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 꽃은 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는 것일 테지요?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9 2010.05.03
하늘 - 박두진 詩 -하 늘 -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10 2010.05.03
사평역에서 - 곽재구 詩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0.05.03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윤동주 詩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3 2010.05.03
저녁에 - 김광섭 詩 -저 녁 에-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김광섭 詩- 시집「겨울날」(창작과비평사刊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8 2010.05.03
5월의 시 - 이해인 시 - 5월의 시 -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抒情詩를 쓰는 5월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 피곤하고 散文的인 日常의 짐을 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 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네 가슴 속에 퍼 올리게 하십시오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6 2010.05.03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석정 詩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2 2010.05.02
아침을 위하여 - 김재진 詩 - 아침을 위하여 - 잠들지 말아야지 이 추운 밤 눈사람도 지친 듯 눈꽃에 싸여 조는 밤 같이 걷던 친구마저 동태가 되어 얼어붙은 밤 입김을 호호 불며 걸어가야지 잠들지 말아야지 두 눈 동그랗게 밝혀 어둠이 깊어도 멀잖은 아침 햇살 이야기 나누며 걸어가야지 머리 위엔 눈꽃이 쌓여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6 2009.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