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 - 박인환 詩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0.06.09
겨울의 빛 - 김명인 詩 -겨울의 빛- 골목 안 국밥집에는 두 사내가 마주앉아 허름한 저녁을 들고 있다, 뚝배기 속으로 달그락거리던 숟갈질이 빈 반찬그릇에서 멎자 한 사내는 아쉬운 듯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붙여 물고 유리창 밖을 내다본다, 마주앉은 사내는 목덜미를 타고 내리는 식은땀은 닦아낼 겨를도 없..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2 2010.06.09
황홀한 고백 - 이해인 詩 -황홀한 고백-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 내는 거대한 밤 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10 2010.06.09
마음 - 김광섭 詩 -마 음-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느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4 2010.06.09
미당리 - 신현봉 시 - -미당리- 질고개 넘으면 청솔 내음의 저녁연기 성탄절의 그림엽서 속을 하얗게 날아오르고 산모롱이 돌아 평장들에는 세상의 온갖 풀벌레 어느 때나 낭자히 울고 있는 마을이여 -신현봉 詩- (시집, "작은 것 속에 숨어 있는 행복", 2007년)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4 2010.06.02
가을에 - 정한모 詩 -가을에-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 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微笑)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 쥔 아..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1 2010.06.02
새벽 편지 - 곽재구 詩 -새벽 편지- 새벽에 일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은 잠들고 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박이는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 아름다움은 새벽의 창을 열고 우리..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0.06.01
가지 않은 길 - R.L 프로스트 시 -가지 않은 길- 노란 숲속으로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워 길이 굽어진 시야 끝까지 오랫동안 서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갔습니다. 그 길은 풀이 무성하고 사람이 걸은 흔적이 적어 더 나은 길일 거라고 생..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1 2010.05.22
저녁눈 - 박용래 시 -저녁눈 -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박용래 詩- (시집 『싸락눈』, 1969) 배경화면 : Grindelwald, Swiss..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8 2010.05.22
눈 오는 밤에 -김용호 시 -눈 오는 밤에-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를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바깥엔 연방 눈이 내리고 오늘밤처럼 눈이 내리고. 다..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3 2010.05.22
어떤 귀로 - 박재삼 詩 -어떤 귀로- 새벽 서릿길을 밟으며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가 촉촉한 밤이슬에 젖으며 우리들 머리맡으로 돌아오셨다. 선반엔 꿀단지가 채워져 있기는커녕 먼지만 부옇게 쌓여 있는데, 빚으로도 못 갚는 땟국물 같은 어린것들이 방 안에 제멋대로 뒹굴어져 자는데, 보는 이 없는 것, 알..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6 2010.05.22
담쟁이 - 도종환 詩 - 담쟁이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3 2010.05.22
유월의 숲에는 - 이해인 詩 -유월의 숲에는 - 초록의 희망을 이고 숲으로 들어가면 뻐꾹새 새 모습은 아니 보이고 노래 먼저 들려오네 아카시아꽃 꽃 모습은 아니 보이고 향기 먼저 날아오네 나의 사랑도 그렇게 모습은 아니 보이고 늘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네 눈부신 초록의 노래처럼 향기처럼 나도 새로이 태어나..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7 2010.05.19
외인촌 - 김광균 詩 -外人村 - 하이얀 暮色 속에 피어 있는 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驛燈을 달은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루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힌 돌다..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7 2010.05.17
촛불 켜는 아침 - 이해인 詩 -촛불 켜는 아침 - 밭은 기침 콜록이며 겨울을 앓고 있는 너를 위해 하얀 팔목의 나무처럼 나도 일어섰다 대신 울어 줄 수 없는 이웃의 낯선 슬픔까지도 일제히 불러 모아 나를 흔들어 깨우던 저 바람소리 새로이 태어나는 아침마다 나는 왜 이리 목이 아픈가 살아 갈수록 나의 기도는 왜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9 2010.05.17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 이해인 詩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손 시린 나목(裸木)의 가지 끝에 홀로 앉은 바람 같은 목숨의 빛깔 그대의 빈 하늘 위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차 오르는 빛 구름에 숨어서도 웃음 잃지 않는 누이처럼 부드러운 달빛이 된다. 잎새 하나 남지 않은 나의 뜨락엔 바람이 차고 마음엔 불이 붙는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6 2010.05.17
그리운 불빛 - 도종환 시 -그리운 불빛- 산모퉁이 돌아 삼태기처럼 마을을 싸안은 기슭 아래 어둠을 툭툭 털어내면 그 안에 씨앗처럼 반짝이는 몇 개의 불빛 창 밖으로 도란도란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들으며 기와지붕의 뒷덜미 따스하게 만져 주거나 아직도 어느 먼 곳에서 돌아오지 못한 지친 걸음의 한 사람을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2 2010.05.16
청산의 아침 - 신현봉 시 -靑山의 아침 - 청산 속에서 청산을 마주하고 앉아 청산의 빗소리를 듣습니다 매미들과 풀벌레들은 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빗속에서도 염불을 그치지 않습니다 비가 와도 새끼들은 먹여야 한다고 산새들이 빈 절간으로 날아듭니다 청산의 아침은 청량한 기운으로 가득하고 나그네는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9 2010.05.15
도 봉 - 박두진 시 -도봉(道峰)-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 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먼 골 골을 되돌아 올 뿐. 산 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3 2010.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