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 부근(星湖附近) - 김광균 詩, -성호 부근(星湖附近)- 1 양철로 만든 달이 하나 수면 위에 떨어지고, 부서지는 얼음 소리가 날카로운 호적(胡笛)같이 옷소매에 스며든다. 해 맑은 밤 바람이 이마에 내리는 여울가 모래밭에 홀로 거닐면 노을에 빛나는 은모래같이 호수는 한 포기 화려한 꽃밭이 되고, 여윈 추억의 가지가..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3.08.10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 - 김종한 詩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 능수버들이 지키고 섰는 낡은 우물 가 우물 속에는 푸른 하늘 조각이 떨어져 있는 윤사월(閏四月) ―아주머님 지금 울고 있는 저 뻐꾸기는 작년에 울던 그 놈일까요? 조용하신 당신은 박꽃처럼 웃으시면서 두레박을 넘쳐 흐르는 푸른 하늘만 길어 올리시네 두레..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3 2013.08.10
가을날 - 노천명 詩 - 가을날 - 겹옷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산산한 기운을 머금고…… 드높아진 하늘은 비로 쓴 듯이 깨끗한 맑고도 고요한 아침…… 예저기 흩어져 촉촉이 젖은 낙엽을 소리 없이 밟으며 허리띠 같은 길을 내놓고 풀밭에 들어 거닐어 보다 끊일락 다시 이어지는 벌레 소리 애연히 넘어가는..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1 2013.08.08
장 날 - 노천명 詩 -장 날 -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릿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 이쁜이보..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8 2013.08.06
봄 비 -이수복 詩 - 봄 비 -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 이..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4 2013.07.17
가을노래 - 이해인 詩 -가을노래- 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소리를 내면 비어 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흐르며 속삭이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바람이고 싶어요 서걱이는 풀잎의 이마를 쓰다듬다 깔깔대는 꽃 웃음에 취해도 보는 연한 바람으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풀벌레이고 싶어요 별빛을 등에 업고 푸른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1 2013.06.25
대설주의보 -대설주의보- 눈 덮인 채 해일처럼 굽이치던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 마을 길 끊어 놓을 듯 은..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3 2013.04.09
유월 -유 월 - 춘천호(春川湖) 맑은 물 위에 흰 구름 흘러가는 유월입니다. 호수에 비치는 산 그리메에서 뻐꾹뻐꾹 뻐꾸기 울음 우는 유월입니다. 늦게 핀 아카시아 꽃 한 송이는 아직도 떨어지지 않고 향기를 날리고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고 뜨겁지 않은 6월은 푸름이나 더해가며 또 흘러갑니..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7 2013.03.12
이별의 노래 - 정호승 詩 -이별노래 -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그대의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7 2013.03.01
승 무(僧舞) - 승 무(僧舞) -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 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3.02.12
또 기다리는 편지 - 정호승 - 또 기다리는 편지 -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3 2011.06.04
가을을 위하여 - 노원호 - 가을을 위하여 - 가을을 위하여 햇살 한 줄기 들길로 나왔다.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위한 가을 그래서 풀꽃은 하얀 꽃대궁을 흔들고 고추잠자리는 더욱 빨갛게 온몸을 물들이고 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동안 가을 빛은 제 몫을 다한다. 늘 우리들 뒤켠에 서서도 욕심을..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1 2011.06.04
가을밤 - 김용택 시 -가을밤- 달빛이 하얗게 쏟아지는 가을 밤에 달빛을 밟으며 마을 밖으로 걸어나가보았느냐 세상은 잠이 들고 지푸라기들만 찬 서리에 반짝이는 적막한 들판에 아득히 서보았느냐 달빛 아래 산들은 빚진 아버지처럼 까맣게 앉아 있고 저 멀리 강물이 반짝인다 까만 산속 집들은 보이지 않..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1 2010.08.14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詩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數千數萬)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0.08.14
눈물 - 김현승 시 -눈 물-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져......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3 2010.08.14
가을의 기도 - 김현승 시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1 2010.08.14
추일서정 -김광균 시 -추일서정(秋日抒情) -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9 2010.08.14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詩 - 성북동 비둘기 -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바퀴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5 2010.08.14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詩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8 2010.06.11
불곡산 - 신현봉 詩 -불곡산- 불곡산에는 봄이 오고 어둠에 잠긴 산 아래 마을에는 몇 개의 불빛만 깨어 있습니다. 그 사이에 몇 세기가 지나가고 광속으로만 가고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잠시 나타났다가는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갑니다. 캄캄한 이 세상의 끝에서부터 칙 칙 폭 폭 봄이 기차를 타고 왔으.. ▶ 시인(詩人)의 마을/시인의 마을 4 2010.06.11